이번 전시를 준비하며(a.k.a 푸념)




처음 박물관에 입사했을 때 가장 놀랐던 것 중에 하나가 일본 작품이 상당수 소장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이 박물관은 도자기로 워낙 유명하기 때문에 내가 내 전공(동아시아 회화교류사, 일본회화사)을 살려서 주도적으로 일할 기회가 없을 것이라 예상했다. 게다가 국립중앙박물관, 국립고궁박물관 정도를 제외하고는 우리나라에 일본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기관이 없다고 전해졌는데 이곳에 이렇게 많은 수가 있다니 놀라울 따름이었다.


2년 전에 근대회화 전시를 준비하면서 경험이 쌓였기 때문에-비단 전시기획의 경험 뿐만 아니라 이 조직이 일을 처리해나가는 생리 등 많은 것을 포함한다-지난 전시의 아쉬움을 모두 보완해서 잘 해나갈 자신이 있었다. 큰 긴장감없이 지난 11월부터 본격적으로 준비하기 시작했는데 진행과정에서 나의 자신감이 큰 착오였음을 절감하게 되었다.

문헌, 논문, 도록 등 모든 자료가 (당연히) 일본어라서 한국미술사 전시를 준비할 때에 비해 시간이 배로 든다는 것을 점차 깨닫게 되었다. 다행히 그동안 일본미술사로 논문을 쓰며 모아놓은 자료가 많았다. 공부했던 내용이라 다시 정리만 잘 하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전적으로 나만 책임지면 되는 일(내 논문)과 나의 실수가 기관의 책임으로 전가되는 일(박물관 전시)의 차이는 어마어마하게 큰 부담으로 작용하여 더욱 꼼꼼하게 살펴봐야했다. 게다가 일본에서 미술사학자를 모셔서 검증도 받는 등 준비과정이 한국 전시 때에 비해 일이 몇곱절 늘어났다. 모든 커뮤니케이션을 일본어 메일로 주고받아야 한다는 것도 꽤 시간을 잡아먹는 일이었다.

또한 통역, 작품에 써있는 일본한문 번역, 인장 판독 등을 해주실 선생님들도 각기 수소문해서 섭외해야했다. 한국회화사 전시였다면 그동안 관계를 맺어온 분들 중에 내가 믿고 의지할 만한 분들에게 안부 전화하듯 편하게 전화해서 부탁하면 되었을 일이지만 모든게 새로 시작되는 느낌이 연말쯤부터 들기 시작했다. 내가 크게 착각했다는 생각이 나를 지배하면서 한편으로는 ‘에잇. 하면 되지’라는 생각이 공존했다.

이후 4개월 정도의 기간동안 휴일없이 일했다. 주말이면 느긋하게 쉬어도 되었지만 부담감에 눈이 출근시간에 맞춰 떠졌고, 밍기적대다가 금세 오후가 되어버리면 오늘 하루도 그냥 버렸다는 자책감에 짜증이 온 몸을 휘감는다는 사실을 잘 알기에 도서관에 가서 원고를 쓰며 지냈다. 간간히 눈에 들어오는 전공외의 책들이 있으면 모든 것은 전시 오픈 이후로 미룬다는 생각으로 에버노트 속 ‘사고 싶은 책리스트’ 노트북에 쟁여놓기만 했다. 지금 그 책들을 세어보니 20권 정도 된다. ​

이번에는 유독 전시준비의 모든 과정을 내가 도맡아 할 수 밖에 없었다. 나와 함께 일할 다른 분들은 본관의 재개관이라는 큰 일 때문에 물리적으로 도와주기 어려운 상태였다. 그리고 생소한 일본미술은 내가 할 수 밖에 없기도 했다. 물론 본격적인 전시 준비에 들어갔을 때는 모두 발벗고 나서 으쌰으쌰한 덕분에 큰 의지가 되었다. 그러나 다음에도 이런 식으로 진행된다면 나는 한사코 사양하고 싶다. 내 스타일대로라면 힘들어도 막판에 곧 마무리되어간다는 생각에 더 기분이 업돼서 신명나게 임했을테지만 이번에는 전시 오픈날이 코 앞에 다가올수록 ‘이번 전시는 좀 질린다’는 느낌이 들어 내 스스로도 조금 놀랐다. 그나마 내가 가장 관심있고 평생의 업이라 여기는 일본미술, 동아시아 회화교류에 관한 내용이라 버틸 수 있었다. 이런 기회가 소중하다는 것은 변함없으니 말이다.

본래 이 글은 전시준비를 하는 과정과 이번 전시관람에 알면 도움되는 내용을 하나하나 짚어볼 예정으로 쓰기 시작한 것이지만 막상 서두를 쓰다보니 내가 이렇게 고생했다를 어필하는 글이 되어버렸다. 이렇게라도 털어내야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을 것 같아서 이번 글은 푸념의 글로 남기고 조만간 전시관련 이야기를 할까 한다. 일단 전시실 전경부터 감상해주시길.


아르뜨

현재 박물관에서 큐레이터로 일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시각문화를 향유하는 것에 조금이나마 기여하고자 미술사, 전시 등을 쉽게 소개하는 아트앤팁닷컴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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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댓글 5

      • 오랜 기간동안 준비하시는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였겠어요. 보는 사람이 편안하게 관람하게 될텐데, 조금이나마 그러한 과정을 알 수 있었네요.

      • 그리 봐주시니 감사합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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