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제 검사를 받는 것처럼




내일부터 목요일까지 내리 휴가를 냈다. 근로자의 날도 껴있어서 알찬 연차사용법이라 할 만하다. 지난 11월부터 어제까지 제대로 쉬어본 적이 없는데 모처럼의 휴가이고, 무사히 전시 오픈도 해서 홀가분한 마음이 든다.


어제는 친하게 지내는 선생님들과 후배들이 전시를 보러 놀러왔다. 오랜만에 모여 시청 앞에서 술자리도 가졌는데 좋은 말만 해주셔서 감사할 따름이다. 이번 전시에서 ‘이렇게 했더라면 더 좋았을텐데’라며 아쉬워하고 있던 차에 이들의 격려와 칭찬이 많은 위안이 된다. 이렇게 아쉬움이 묻어지나보다.


모든게 다 끝난 느낌이 든다. 이번 휴가 기간동안 향후 어떤 길을 갈지 고민하고 계획을 세울 참이었다. 침대에서 숨만 쉬며 누워있으려고도 했다. 휴가 당일보다 휴가 전 날이 더 좋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그런데 어제 지도교수님께서 전화를 주셨다.


“이군, 월요일에 급하게 강남갈 일이 있는데 혹시 박물관이 월요일에 여는가.”


순간 고민했지만 당연히 해야할 일이라는 생각에 “네. 오픈하고 저도 출근하니까 선생님 편하실 때 오십시오.”라고 말씀을 드렸더니 10시쯤 도착하신단다. 휴가 첫 날인데 출근하는 것처럼 박물관에 와야되는 상황이 되었다. 내가 전화를 받는걸 옆에서 본 한 선배는 “그냥 너 휴일이라고 하면 되지!!”라며 안타까워했지만 내 스타일을 잘 알기에 이내 웃으며 “어이구”하고 해버린다.


합리적인 생활태도를 지향하지만 그것이 모든 것을 압도할 만큼의 진리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제자로서 수고 좀 하면 어떤가. 언제나 아껴주시고 혼도 많이 내주시는 스승에 대해 예와 정성을 다하고 싶을 뿐이다. 내가 박물관, 학계, 수많은 사람들과의 관계 등에서 현재 점하고 있는 모든 것이 다 선생님 덕분인 것을.


내일은 살짝 긴장된채 집을 나설 듯하다. 마치 숙제 검사받는 느낌이 든다.


아르뜨

현재 박물관에서 큐레이터로 일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시각문화를 향유하는 것에 조금이나마 기여하고자 미술사, 전시 등을 쉽게 소개하는 아트앤팁닷컴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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