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런던에서 쓴 메모

빅토리아앤앨버트미술관 회화실에서


빅토리아앤앨버트미술관에 갔는데 오기 전까지 이곳은 공예 전문 미술관이라 회화가 별로 없으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이렇게 넓은 공간에 회화실을 마련해두고 있을 줄이야.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널찍한 공간과 세련되고 그 나라 느낌을 물씬 살린 진열장에 마련된 중국, 일본관과 달리 한국관은 지나다니는 통로에 진열장 몇개만 놔두었다는 점이다. 작품의 질도 미술사적 가치가 높은 청화백자용무늬항아리 외에는 흔하디 흔한 유물 뿐이었다는 점이 안타까움을 더해주었다.

문화의 힘이란 인위적으로 가시적 성과가 높은 행사 몇 개 치룬다고 높아지는게 아니다. 1인당 GNP같이 수치로 환산할 수 없는 추상적 개념의 문화는 사람들의 인식에 의존하는게 전부이다.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는 일이란 시간도 오래 걸리고 지난하다. 인위적으로 바꿀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그저 묵묵히 할 일을 하면서 자연스레 바뀌어가길 바랄 수밖에 없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 성안나와 성모자 스케치본, 내셔널갤러리


그렇다면 문화의 힘이 중요해지는 이 시대에 정부가 할 일은 무엇일까. 문화 관련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마음껏 활동할 수 있는 장을 만들어줘야한다. 그리고 트렌드 주기가 짧고 신기루같은 이미지의 자화자찬성 한류 행사보다는 우리 문화의 근간인 전통 관련 행사 지원에 무게중심을 둬야한다. 개인적으로는 고미술 순회전, 대표 유물 대여 등이 시급하다고 생각한다.

Denys Puech, Aurore, 1900, 오르세미술관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 때는 박물관들의 해외 전시에 많은 지원을 해줘서 내가 현재 몸담고 있는 박물관도 당시에는 독일, 일본, 미국 등지에서 전시를 많이 개최했다고 한다(MB각하가 등장하면서 모든 지원이 사라졌다). 서구권 인사를 만나면 아직도 회자되는 한국 미술 전시는 모두 그 당시의 전시들이다. 그만큼 교류가 활발하게 이루어졌고 간섭없는 정부의 지원 덕에 전문성 높은 전시가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심지어 북한과의 교류도 성사되면서 북한 현지 답사 성과를 담은 고구려 고분 벽화 전시도 곳곳에서 열렸다. 불과 10여 년 전의 이야기다.

2000년대 후반부터 2010년대 초반까지는 문화에 대한 인식이 경박스럽기 그지없는 사람들이 날뛰고 있는 시대로 기록될 것이다. 이곳에 그냥 눌러앉아 살고 싶다.

- 2015. 09. 15(화) V&C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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