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라는 존재


마흔이 넘어서 알게 된 사실 하나는 친구가 사실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것. 잘못 생각했다. 친구를 훨씬 덜 만났으면 내 인생이 더 풍요로웠을 것 같다. 쓸데 없는 술자리에 너무 시간을 많이 낭비했다. 맞출 수 없는 변덕스럽고 복잡한 여러 친구들의 성향과 어떤 남다른 성격, 이런 걸 맞춰주느라 시간을 너무 많이 허비했다. 차라리 그 시간에 책이나 읽을걸. 잠을 자거나 음악이나 들을걸. 그냥 거리를 걷던가. 결국 모든 친구들과 다 헤어지게 된다.


이십대에 젊을 때에는 그 친구들과 영원히 같이 갈 것 같고 그 친구들과 앞으로도 많은 좋은 일이 있을 것 같아서 내가 손해 보는 게 있어도 맞춰주고 그렇다. 다 헛되다. 어릴 때의 친구들은 더 배려도 없고, 불안정하고 인격이 완전하게 형성되기 이전에 만났기 때문에 가깝다고 생각해서 막 대하고 함부로 대하는 면이 있다. 가깝기 때문에 좀 더 강압적이고 폭력적일 수도 있다.(김영하, 『말하다』 中)


알쓸신잡으로 더욱 유명해진 소설가 김영하가 자신의 책에서 밝힌 친구에 대한 생각이다. 나 역시 이같은 생각을 하며 지내온지 꽤 오래되었다. 나의 경우는 석사 논문을 쓰는 동안(2년 정도 걸렸다) 술자리, 동창 모임 등을 멀리하면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것이다. 당시 모임에 나오라는 친구들의 연락을 거절하면서 내심 대학원 졸업하고 봐도 충분하고, 겨우 이런 걸로 멀어질 인연이면 끊어져도 상관없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대학원을 졸업한지 꽤 시간이 흐른 지금은 그때의 연속선상에 있는 듯하다. 여전히 동창 모임에는 나가질 않고 있고, 오래 산 나이도 아니면서 옛 추억을 안주삼아 술잔을 기울일 수밖에 없는 모임에는 발길을 거두고 있다. 그런 이야기는 50대쯤 되어서야 할 수 있는게 아닌가라는 나름의 인생관 때문이다.


오로지 내가 기꺼이 나가는 모임과 술자리는 현재 혹은 미래지향적이고 인문학적인 관점 및 지식을 근간으로 삼아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 모인 곳 뿐이다. 이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왕래하고 지내는 사람은 소수일 수 밖에 없다. 그래도 전혀 외롭거나 심심하지 않다. 오히려 내 자유의지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기 때문에 모임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올 때 허무함이 없어서 좋을 뿐이다. 대화를 쓸 데 있는 것과 쓸 데 없는 것으로 구분하는 것은 너무 매정한 감이 있지만, 그래도 나에게 쓸 데 없는 대화는 심신을 지치게 만든다. 반대의 경우는 오히려 활력을 얻은채 돌아오게 해준다. 이것만으로도 이런 빈약해 보이는 사교의 당위성은 충분하지 않을까?


무엇보다 나는 말로 소비하는 것 이상으로 공부, 독서, 그리고 혼자만의 행위(영화, 사색, 교보문고 산책 등)를 통해 내 속에 무언가를 계속 쌓고 있다는 느낌을 받아야 비로소 살아있음을 느낀다. 그래서 지금 이런 상태가 가장 자유롭고, 편하고, 행복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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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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