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보틀 in 도쿄 시나가와역


작년 여름에 도쿄갔을 때 블루보틀이라는 카페 브랜드를 처음 접했다. 요즘 일본에 가면 꼭 간다는 곳이라 커피를 좋아하는 나 역시 구미가 당겼던 곳이었다. 그래서 신주쿠에 있는 블루보틀 매장을 찾아갔는데 어마어마한 인파를 보고 들어가지도 못한채 돌아왔던 기억이 난다. 일단 멀리서나마 구경한 바로는 하늘색으로 점철된 브랜드 아이덴티티가 참 신선하게 다가왔다. C.I.도 심플한게 진짜 잘 만들었다는 감탄과 함께 딱 일본 스타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블루보틀은 미국 오클랜드에 본사가 있는 미국 브랜드다. 이렇게 일본스럽게 생겨놓고 미국 기업이라니. 꽤 놀라운 사실이다.


한국으로 돌아온 이후 블루보틀의 인기가 더욱 높아지는 것을 보면서 그 때 그냥 기다려서라도 마시고 왔음 좋았겠다는 아쉬움은 점점 커져만 갔다. 그렇게 반 년의 시간이 흐르고 이번에 다시 도쿄에 가게 되면서 이번에는 꼭 다녀와야겠다는 생각에 다른 선생님들과 같이 가는 답사임에도 불구하고 일정표에 넣었다. 내가 일본에 살아봤고, 일본 전공자라는 이유 때문에 어차피 모든 예약과 스케쥴은 내가 도맡아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보니 박물관이 문을 닫고 난 이후의 저녁 일정은 전부 내 취향대로 해버렸다. 다이칸야마에 있는 츠타야 서점이라던지, 아키하바라의 전자기기 센터 같은 곳으로 말이다. ㅎㅎ


그러나 2박 3일이라는 워낙 짧은 일정이었던 탓에 본래 계획했던 박물관들을 모두 다니면서 블루보틀에 가는 것은 계속 뒤로 밀려만 갔다. 박물관이 문을 닫는 오후 5시 이후에는 내가 이끄는대로 가면 되기는 했지만 중간에 일본에서 유학 중인 선생님과 만나면서 급 술자리를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공부하는 사람들끼리 하는 술자리는 미술사 공부에 대한 이야기만으로도 흥이 나기에 나 역시 즐거웠고, 자극도 되는 시간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이번에도 못가는건가 싶은 아쉬움이 밀려왔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귀국하는 날이 되었다. 다행히 잠시 짬을 내어 오전에 국립근대미술관을 가고 오후에는 에도도쿄박물관에 갔다가 호텔에 맡겨놓은 짐을 찾아서 하네다 공항으로 가는 길에 간신히 들를 수 있었다. 여행 시간을 제대로 쓰기 위해 귀국행 비행기 시간을 저녁으로 했던게 나에겐 신의 한수였다. 더구나 작년 여름에만 해도 번화가 위주로 있었던 블루보틀 매장이 그새 인기가 많아지면서 곳곳에 생긴 덕도 봤다. 항간에 듣기로는 블루보틀이 스타벅스를 이겼다는 소식도 있었다. 그게 매출인지 무엇을 기준으로 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마침 내가 묵었던 시나가와프린스호텔이 있는 시나가와역 안에 블루보틀 매장이 있어서 하네다공항으로 가는 전차를 타기 전에 블루보틀부터 들렀다. 나의 목표는 아메리카노 한 잔과 블루보틀 원두 및 핸드드립용 도구들이었다. 선생님들은 무슨 커피길래 이렇게까지 가려고 하냐며 의아스러워하는 눈치였지만 결국 내가 사는 것을 보시더니 따라서 박물관 직원들 주신다며 원두를 구매해가셨다. 다녀와서 며칠 후에 나에게 "이야~ 이선생 덕분에 직원들한테 센스있는 아저씨됐어. 어떻게 블루보틀을 알고 사오셨냐고 하더라"라며 뿌듯해하셨다. 그 말을 들은 나는 더욱 뿌듯했다.


이래저래 여행의 마지막을 블루보틀의 커피로 장식하였다. 워낙 진한 맛을 선호하는 나로서는 시큼하면서도 입 속에서 깊은 맛이 감도는게 블루보틀이 왜 인기있는지 알 것 같았다. 더불어 여행다니며 피곤이 몰려올 때쯤 마시는 현지의 아메리카노는 그 자체만으로도 또 다른 여행이었다. 머리가 다시 돌기 시작하면서 눈이 생생하게 떠지는 것 같은 그런 느낌. 어쩌면 이 것을 맛보고 싶어서 여행을 다니는 것은 아닐런지. 아니면 여행길에 피곤해지는 것도 안심하고 즐기게 되는게 아닌가 싶다.



하늘색과 갈색의 조화. 일반적인 생각으로 절대 조화를 이루지 못할 것만 같은 색들을 가지고 디자인했다는 점이 놀랍다. 두 색이 이렇게 서로 잘 어울릴 수 있다니. 기계적인 깔끔한 색은 아니지만 마치 손에 길들어서 점점 운치있어지는 오래된 가죽을 보는 듯하다.



아~ 다 사오고 싶다. 저 컵을 내가 왜 안샀을까!



가장 진하면서도 향이 좋고 인기 많은 것으로 달라는 어찌보면 까탈스러운 나의 부탁을 선선하게 들어준 직원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써놓고 보니 어째 뉘앙스가 1,000원 쥐어주면서 아이스크림이랑 과자 먹고 싶은거 사고 500원 남겨와라고 하는 것 같다.



패키지도 버리지 않고 잘 갖고 있음.



왠지 마음까지 순수하게 만들어주는 듯한 푸근한 하얀색의 핸드드립 드리퍼. 도자기로 되어있어 훨씬 고급스러워 보임. 매끈하고 새하얀 조선초기 백자를 보는 느낌이랄까.



식은 커피를 물처럼 마시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커피를 한 번에 많이 내려놓고 오랫동안 마실 수 있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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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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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댓글 1

      • 전 블루보틀 오모테산도점 갔었는데, 절반 이상의 한국인들을 보고
        약간 질리긴했지만... 커피는 맛나서 잘 마시고 왔어요~!
        굿즈는 하나도 못 샀는데... 담번에는 다 사와야겠어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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