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는 우열로 구분하지말고 특징으로 바라봐야한다.


이 작품은 도쿄 네즈미술관 소장 <닭모양 채색백자>입니다. 일본은 잘 아시다시피 임진왜란 이후 조선도공들에 의해 백자가 시작되었지만 30년도 채 안돼서 독자적인 백자를 완성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가 1600년대 중반인데 마침 유럽(네덜란드, 포르투갈 등)과 교역관계에 있던 중국이 해금령을 내리면서 유럽 왕실에서 인기있었던 중국 청화백자 수출이 불가능하게 되었죠.

이 때 네덜란드를 비롯한 여러 국가들이 대안으로 삼은게 일본이었습니다. 중국 청화백자 대신 일본 청화백자로 수입루트를 바꾼 것이지요. 일본은 자연스럽게 당시 최고가품이었던 도자기가 수출상품으로 인기가 있게 되자 규슈 비젠현을 중심으로 청화백자(아리타 자기) 생산이 증가하게 됩니다. 이때부터 유럽의 일본문화가 스며들기 시작한겁니다. 그들에게 백자 기술을 전수해줬던 우리나라로선 꽤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지난 주말에 도쿄에 다녀왔는데 네즈미술관에서 개최 중인 <에도시대 청화백자 400년> 특별전을 보고 상당히 충격을 받고 돌아왔습니다. 백자의 기형과 유약의 색, 그리고 세련된 문양 표현 등을 보며 우리가 백자기술을 전해줬다는 사실 하나에만 집착하고 스스로 너무 만족스러워하기만 했던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일본 학계에서는 조선 도공 이삼평이 처음 일본에서 백자를 제작한 1616년을 일본 백자의 시작으로 보는데 30여년만에 유럽에 수출할 정도가 되었다? 이것은 일본이 그저 우리에게 배웠다고만 보기엔 너무 짧은 시간이거든요. 백자는 1616년에 시작되었을지라도 그전부터 도자기에 대한 내공이 쌓여있었다고 보는게 합리적인 가정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문화는 우열로 구분하지말고 특징으로 바라봐야한다"는 중요한 전제가 새삼 떠올랐습니다. 어쩌면 은연중에 우리나라 문화가 더 우수했고, 일본은 그저 우리의 영향을 받았다는 선입견에 사로잡혀있다는 생각도 들었지요.

제 전공이 동아시아 회화사, 그 중에서도 일본에 무게 중심을 두고 있다보니 일본을 가장 많이 가는 편인데 가서 전시를 볼 때마다, 그리고 공부하면 할수록 우리나라에서는 일본미술사에 대한 연구가 부족한 것을 넘어 이런 선입견마저 지니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좋게 생각하면 연구할 '꺼리'가 많다는 것이고, 비관적으로 생각하면 '혼자 어느 세월에 공부하나'는 생각도 드네요.

설 명절 인사를 하려다가 이야기가 길어졌습니다. ㅎㅎ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계획한 일, 꿈꾸는 일 모두 이루는 한 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일단 연휴 때는 재밌게 보내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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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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