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스킨과 라미 만년필, 그리고 잉크 번짐


몰스킨 노트를 애용한지 어느덧 2년이 넘었다. 몰스킨이라는 브랜드가 있는지조차 몰랐던 시절에는 메모도 잘 하지 않았거니와 공부할 때는 그저 옥스포트 스프링 노트에 휘발성으로 쓰기만 했었다. 그러다가 어떤 계기로 인해 몰스킨이라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고 그대로 매료되었다. 그리고 하이테크 볼펜만 사용하다가 만년필의 필기감에 매력을 느껴 많은 이들이 그렇듯 라미 사파리 만년필부터 사용하기 시작했다.


즉 몰스킨 노트와 라미 만년필의 조합으로 나의 노트 및 메모 집착이 시작된 것인데 사용하다보니 한가지가 늘 아쉬워졌다. 몰스킨의 단점으로 꼽히는 잉크가 번질 정도의 종이질의 문제였다. 그래서 몰스킨의 종이보다 질이 좋다는 로이텀(LEUCHTTURM 1917) 노트나 미도리 트래블러스 노트로 바꿔보기도 했다. 그러나 노트의 판형과 나의 쓰임새를 보니 역시 몰스킨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로이텀은 가로 사이즈가 조금 더 넓어서 뭐랄까 노트의 형태가 샤프하지 않고 둔해 보였다. 사실 별것도 아닌 문제이지만 나이를 먹어갈수록 사소한 소품에도 나의 취향이 묻어났으면 좋겠다는 욕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래서 다시 몰스킨으로 돌아왔는데 위의 사진에서 볼 수 있듯이 뒷면의 잉크 번짐은 쓸 때마다 아쉬웠다. 다른 만년필을 쓰면 조금 덜하긴한데 라미 만년필 특유의 사각사각 써지는 소리 때문에 이 또한 포기할 수 없었다. 또한 너무 정석적이고 클래시컬한 만년필보다는 약간의 캐주얼함도 담고 있는 모습도 라미 만년필만한게 없었다.


그렇게 아쉬움 속에 써오다가 불현듯 어떤 생각이 머리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잉크 번짐의 문제가 오롯이 몰스킨만의 문제가 아니라 잉크의 문제가 아닐까라는 생각이었다. 이제와서 생각해보면 그걸 왜 진작 생각하지 못했을까 싶을 정도로 지극히 사소한 생각이다. 그래서 라미 만년필에 잉크를 담아서 쓸 수 있는 전용 컨버터를 사다가 플래티넘 만년필의 잉크를 담아보았다. 결과는 아래 사진들로 확연히 알 수 있다.



몰스킨에 라미 사파리 만년필(+ 라미 잉크)로 쓴 결과. 뒷 페이지에 잉크가 번져서 비치는게 최악이다. 아무 것도 쓸 수 없을 정도다.



플래티넘 잉크를 라미 사파리 만년필에 넣어 쓴 글. 뒷 페이지는 어떨까?



최고의 결과였다. 잉크가 번졌는지 신경조차 쓰이지 않을 정도로 이제서야 평범한 노트처럼 보인다. 물론 펜촉이 무뎌져서 글씨가 두꺼워지면(그렇지 않아도 라미 만년필을 펜촉이 두껍기로 유명하다) 조금씩 번진다. 그러나 만년필은 손에 힘줘서 쓰는 펜이 아니기 때문에 정석대로 만년필을 가볍게 쥐고 쓰면 번질 일이 없다. 나는 유독 힘을 줘서 글자의 조형이 완벽하게 갖춰지게끔 쓰는 편인데도 안번지는 것을 보면 아주 양호하다고 볼 수 있다.



내가 사용하는 플래티넘 만년필의 잉크다. 나처럼 몰스킨과 라미의 조합을 좋아하는 분이라면 라미 전용 컨버터와 플래티넘 잉크를 사서 쓰기를 추천한다. 이 조합에 조금 더 의미를 더하자면 가지런히 앉아 컨버터에 잉크를 담는 행위는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혀주는 효과도 있다. 공부하기에 앞서 차분히 버퍼링하는 느낌이랄까.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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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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