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서 큐레이터를 한다는 것은

오르세미술관에서, 2015년 가을


프랑스에서 큐레이터(학예사)를 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프랑스에서 ‘미술관(박물관)’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곳은 전부 국립 기관이기 때문이다. 즉 프랑스 미술관에서 근무하려면 프랑스의 공무원이 되어야하는데 당연히 한국 국적의 사람이 될 가능성은 없다고 봐야할 것이다. 프랑스 정부를 위해 일할 외국인을 정부차원에서 초빙하는 경우가 있다면 가능하겠지만 이 경우는 일반적인 취직과 다른 범주의 이야기이고 극히 드문 기회에 불과할 것이다.

갤러리에 취직하는 것은 가능하고, 충분히 도전할 만한 것 같다. 특히 일본을 중심으로 동아시아 현대미술에 대한 관심과 거래가 활발한 요즘이라면 한국 출신이 ‘비집고’ 들어갈 공간은 분명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비집고 들어가다’는 표현을 굳이 사용한 이유는 가능성이 있을 뿐이지 어려운건 매한가지이기 때문이다. 동양미술(미술사, 이론 등)을 전공한 프랑스인을 놔두고 현지 문화에 서툰 이방인을 채용할 일이 얼마나 있을까?

또한 ‘미술관(박물관)’ 명칭에 연연하지 않고 그저 미술이 좋아서 큐레이터로 일만 해도 좋다는 사람에겐 다른 길도 있긴 하다. 위에서 말했듯이 프랑스에서는 미술관(박물관)이라는 명칭은 전부 국립 기관이기 때문에 사립 문화재단 같은 곳은 미술관(박물관) 대신 ‘파운데이션’ 같은 명칭을 사용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2014년에 개관한 ‘루이 비통 파운데이션’이다. 파리 볼로뉴 숲 안에 있다. 이곳은 명칭만 다를 뿐 모네, 반 고흐, 피카소 등 근대미술의 걸작들과 현대미술품들을 다수 소장하고 있어 미술관과 똑같이 운영되고 있다.


이곳에 취직할 수 있다면 큐레이터로 근무할 수 있을 뿐더러 우리나라처럼 외국의 경력을 높이 여기는 곳에선 꽤 인정받는 일이 될 것이다. 더구나 50년 후에는 이 재단이 파리시 산하로 들어갈 예정이기 때문에 그 때가 되면 ‘미술관(박물관)’이 될 것이다. 현재 루이 비통 파운데이션은 아주 인기리에 전시 문화를 선도해나가고 있다고 한다. 서양의 유명 브랜드이고, 서양미술 작품 위주의 컬렉션을 갖춘 사적으로 설립된 재단에서 프랑스인들을 제쳐놓고 굳이 한국인을 채용할 이유는 딱히 없을 것이기 때문에 어려운건 마찬가지이다.

간단하게나마 프랑스에서 큐레이터로 일하는 것에 대해 살펴봤는데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은 어떻게 다가갔을지 궁금하다. 아마 막막하고, 상당히 어려운 길이라는 느낌을 받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외국에서 큐레이터로 취직하는 것에 대해 문의하는 사람들에게 늘 이야기하듯이 현실성 높은 답은 한가지이다. 한국미술사(중국, 일본미술사도 커버 가능하도록)를 전공하되 외국어를 현지인보다 더 잘 할 정도로 열심히 익혀서 차라리 외국박물관의 한국관을 담당할 큐레이터 자리를 목표로 삼으라는 것이다.

미술사 공부를 조금이라도 해 본 사람은 느껴봤겠지만 미술사는 모국어로 공부하기에도 문장과 개념이 상당히 어려운 인문학이다. 이러한 특징은 외국에도 적용된다. 외국에서도 미술사는 역사, 철학 등을 기반으로 공부하여 고급 문법, 어휘, 개념을 사용하기 때문에 현지인들에게도 진입 장벽이 높은 학문으로 여겨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보다 높은 어학 실력을 갖추라는 것이다.

진로를 고민할 나이인 20대들은 앞선 세대에 비해 상대적으로 어릴 때부터 해외 여행을 다녀본 경험이 많고, 그만큼 외국 문화에 익숙한 세대이기 때문에 충분히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만약 자신 스스로가 외국에서 큐레이터로 일하며 사는 것에 대해 분명한 목표의식과 사명감이 있고 행복할 것 같다고 여겨진다면 이왕 어려운 공부, 어려운 길을 택한만큼 과감하게 시간을 투자해서 도전해보길 바란다. 그러나 분명히 알아야할 점은 보통 쉬운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도 자신이 원한다면 해봐야 하지 않을까? 미래의 자신에게 미안해지지 않고 후회를 남기지 않으려면 말이다. 한국미술사를 제대로 공부하고(대학원 코스워크를 제대로 밟고), 어학 실력만 좋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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