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기획을 하며 느낀 점 몇 가지


근대미술을 주제로 전시한다는 것은 어쩌면 큐레이터에게 있어 가장 큰 도전에 직면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근대는 말 그대로 지금과 가장 가까운 시대이다. 그만큼 자료도 많고, 이에 따라 다양한 분야에 많은 수의 전문가들이 포진하고 있다. 심지어 작가의 손자, 손녀들이 아직 생존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 그들은 작가에게 직접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위치에 있기 때문에 무시할 수 없는, 어쩌면 가장 큰 목소리를 낼 수 있기도 하다.

더군다나 근대미술품들은 불과 얼마 전까지 현대작품으로 거래되어왔고 덕분에 위작도 많다(천경자 미인도 관련 논란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될 듯). 또한 그 어떤 시대보다 비평글도 많이 남아있다. 즉 근대미술은 미술사 고유의 방법론을 벗어나 다양한 이야기를 다룰 수 있는 분야라는 것이다. 예술학, 미술이론, 비평, 미술감정학 등 미술사학계에서만 커 온 나같이 평범한 미술사 출신 큐레이터에게는 신경쓸 것이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전혀 접해보지 못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와서 한마디 툭 내뱉으면 일파만파 커질 수 있는게 근대미술이다. 나는 작년에 이 전시기획을 맡으면서 이 점이 내내 신경쓰이고 긴장되었다. 사실 아직도 긴장의 끈을 놓고 있지 않다(아침에 눈뜨면 가장 먼저 하는게 스마트폰으로 박물관 이름으로 기사 검색부터 할 정도이니). 자칫 잘못하면 박물관에 누가 되는 것은 물론이고 내 커리어에도 불명예스럽게 꼬리표처럼 따라다닐게 뻔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시준비를 하는 틈틈이 예전 기사들을 검색하며 근대미술과 관련해서 누가, 어떤 요소를 문제삼아왔는지, 무엇이 논란거리였는지 하나하나 정리해가며 감을 익히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하다보니 한 가지 결론을 세울 수 있었다. 원론적인 이야기로 돌아온 것이지만 이러한 과정을 통해 나는 기본에 더욱 충실할 수 있었다. 그 결론이란 결국 작품에 대한 철저한 분석과 근거있는 미적 가치 부여, 그리고 검증이었다.

큐레이팅은 결국 거르는 작업이다. 조금이라도 부족하다 싶으면 가차없이 전시 리스트에서 제외시켰다. 교수님들께 자문을 구할 때도 한 분의 이야기만 듣지 않고 세부 전공으로 구분하여 여러 선생님들을 모신 후 무조건 크로스 체크를 하였다. 그래서 여러 선생님들의 의견이 일치하는 것을 베이스로 삼고 그 다음에 내 생각을 집어넣었다.

도록에는 전시를 명품 브랜드화 하듯이 이 분야에서 가장 인정받는 선생님들께 논고를 받아 함께 게재하였다. 도록 뒤에 실리는 논고야 많이들 하고 있지만, 우리 박물관의 기존 관례에서 조금 더 욕심을 부려 원로 학자와 젊은 학자의 글을 모두 담아야한다고 주장하였고 관장님은 흔쾌히 수락해주셨다.

내가 이런 주장을 한 것에는 전시가 오픈된 후 근거없는 논란 제기는 처음부터 차단하겠다는 뜻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작품 설명 글을 쓰는 나 역시 상당한 공을 들였다. 물론 부족한 점이 있지만 내 석사 논문 때보다 더 공을 들이고 열심히 쓴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근대라는 암울한 시기상 때문에 학부, 석사과정 때 들여다보기조차 싫어했던 나로서는 최선을 다했다고 할 수 있다.

이렇듯 온 신경을 다 써서인지 세간의 좋은 평가가 들리면 굉장히 뿌듯하고 행복하다. 인사치레로 전시 참 좋다고 말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저 감사하고 기쁠 따름이다. 전시기획보다는 책을 읽고 공부하고 글쓰는 학자에 더 큰 목표를 두고 있는 나이지만 이번을 계기로 큐레이터라는 직업에도 조금은 보람을 느끼게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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