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에노 공원 스타벅스


이번 여행은 지난 여행들과 달리 특정 전시를 목표로 떠난게 아니었다. 그저 쉬고 싶은 마음에 일단 항공권만 예약해두고 아무 생각없이 떠난 여행이었다. 어찌보면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항공권이 내 손에 있다는 사실은 바쁜 와중에도 위안이 되어주었던 것 같다. '조금만 버티면...', '다음 주면 난 도쿄행 비행기에 있겠지.' 등의 생각을 하며 유달리 길고 힘들었던 전시 준비를 버텨낼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드디어 떠나는 날이 다가왔다.


김포공항에서 아침 8시 비행기를 타고 10시쯤 하네다 공항에 도착했다. 곧장 모노레일을 타고 도쿄 시내로 들어와 타마치역 근처 호텔에 짐을 맡겨두고 우에노에 있는 도쿄국립박물관으로 향했다. 동양미술사를 전공하는 사람들에게 도쿄국립박물관은 일단 성지순례하듯이 들르는 제1코스인 듯하다.



하네다 공항에 도착한 후 비행기와 터미널을 이어주는 터널에서 처음 본 도쿄의 하늘은 청명했다. 다만 기온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는데 역시 일본답게 습하고 꽤 더운 날씨였다. 우에노 역에서 내려 바로 공원으로 들어가지 않고 왼쪽으로 내려가면 시장과 식당가가 나온다. 점심 식사를 하러 적당한 집을 물색하던 중에 한 무리의 일본 고등학생들을 만났다. 이런 날씨 속에서도 교복을 스웨터까지 단정하게 입었다. 그만큼 더위에 강하다고 해야 좋을지, 아니면 규정을 잘 지킨다고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내가 고등학생일 때는 상의를 바지 위로 빼입느냐, 넣어입느냐를 두고 선생님들과 학생들이 숨바꼭질을 엄청 했었는데.



그동안 숱하게 다녔던 일본 여행에서 스타벅스는 오아시스 같은 역할을 해주었다. 그 중 하라주쿠의 스타벅스와 우에노 공원 속 스타벅스는 대표적인 오아시스였다. 하라주쿠는 대개 시부야부터 시작되는 쇼핑이 끝나는 지점이기 때문에 항상 힘든 상태에서 들렀기 때문이고, 우에노 공원은 도쿄국립박물관, 국립서양미술관에서 오랜 시간동안 전시를 보느라 얼얼해진 다리를 쉬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이 날은 일단 스타벅스부터 들리기로 했다. 어둑어둑한 새벽에 공항에 도착하여 비행기를 타고 오는동안 이미 꽤 지쳐있었기 때문이다. 일단 여기에서 시원한 커피부터 한 잔 마시고 본격적으로 전시관람과 도록 쇼핑을 하기로 했다. 박물관에서만 4시간 정도 소요될게 분명하여 여유부터 챙긴 것이다.



금요일 낮인데도 주말처럼 사람이 많았다. 언제나 그랬듯이 현관문 밖까지 줄을 서고 있었고 스타벅스 직원은 메뉴판을 건네며 대기 시간을 줄이려는 노력을 하고 있었다. 나는 언제나처럼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먹으려 했지만 한국 메뉴에는 없던 치즈 케익 프라푸치노가 눈에 들어왔다. 그 맛이 정말 궁금했지만 그래도 달콤한 텁텁함보다는 청량함을 원했기에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10년 전에 일본에서 어학연수를 마치고 돌아와 곧장 스타벅스에서 일을 한 적이 있었다. 그 때만 해도 카페 문화가 정착되지 않던 때라 고등학생들이 거의 오지 않았는데(요즘도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일본에서는 심심치 않게 고등학생들을 만날 수 있었다. 어릴 때 커피 마시는거 아니라고 배워왔는데 뭔가 속은 느낌.



매장 내에 자리가 없어서 밖에 겨우 자리를 잡았다. 아저씨들처럼 절로 "어이구 시원하니 조쿠나~"가 나왔다. 분명 더운 날씨였음에도 지붕 끝에서 맹렬한 기세로 뿜어내는 가습기 덕분에 촉촉하면서도 시원함이 느껴졌다.



여행에서 전시를 보는 것은 언제나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최단거리의 동선과 어떤 전시실부터 볼지, 어떤 종류의 도록을 살지의 결정을 수반한다. 자칫 실패하면 향후 몇 개월동안 혹은 1년 넘게 다시 오기 힘들기 때문이다. 예전에 TV에서 본 우동 한 그릇 먹으러 당일치기로 도쿄를 다녀온다는 화성인을 부러워했던 유일한 이유이기도 하다.


중점을 두고 볼 전시실과 도록 구매목록을 결정하고 이제 슬슬 시작해볼까를 말하던 순간 멈칫 거리게 하는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병아리같은 유치원생들의 소풍 행렬이 펼쳐진 것이다. 고무줄을 턱에 끼운 노란 모자, 반바지에 무릎까지 올라오는 하얀 스타킹을 신은 전형적인 일본의 아이들. 남의 집 강아지와 남의 집 애기를 무척 좋아하는 나로선 한참을 구경할 수밖에 없었다. 마치 바다 건너 온 귀한 손님인 조선통신사의 화려하고 장대한 행렬을 생전 처음 구경하는 에도 사람들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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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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