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방무사 in 계동


나는 예전부터 강의할 수 있는 나만의 공간을 만들려고 준비해왔다. 그러다가 덜컥 박물관으로 들어가는 바람에 일단 보류 중이지만 가까운 미래에 꼭 마련할 생각으로 이런저런 정보를 수집하고 있다. 내가 만들고 싶은 것은 홍대의 땡스북스(내가 두번째로 좋아하는 서점, 땡스북스), 논현동의 북티크(메모 습관의 힘 저자 강연회 in 북티크 서점)와 같은 느낌의 공간이다. 지금은 직접 대관을 하거나 초청을 받아서 강의를 하고 있지만 나만의 공간이 생긴다면 사방 벽에는 미술, 철학, 역사 관련 책으로 채우고, 빔 프로젝터 혹은 LCD 모니터로 미술사 도판을 보며 강의도 하고 사람들이 와서 공부도 할 수 있게끔 하고 싶다. 나는 그곳에서 공부도 하고, 강의도 하며, 글을 쓰고 싶다. 내가 궁극적으로 원하는 삶의 모습이다. 현재는 학자로 성장하는 발판이자 커리어 쌓는 단계라 생각해서 큐레이터로 몸을 담고 있지만 말이다.


어쨌든 이런 공간을 만들고 싶은 생각은 놓지 않고 있으며 좋은 공간이 생기면 꼭 가서 구경하곤 한다. 대개 이렇게 가면 나 역시 그곳의 팬이 되어 회원가입을 하거나, 책을 종종 사오게 된다. 그만큼 내 취향과 잘 맞을 것 같다는 생각에 방문한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 들렀던 <책방무사>도 생겼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가보고 싶었던 곳이었다. 대개 저녁 6시까지만 운영을 해서 평일에는 출근하느라 못가고, 주말에는 강의하느라 좀처럼 시간을 내기 어려웠다. 그러던 이번 주말, 오랜만에 텅 빈 스케쥴 덕분에 전시를 보러가려다가 이내 마음을 바꿔 책방무사를 다녀왔다.



언론에도 종종 나오듯이 책방무사는 홍대 여신이라는 애칭으로 유명한 가수 요조씨가 운영하는 책방이다(책방무사 트위터). 규모가 작은 공간이어서 많은 책들을 진열해놓지는 않았지만 책 하나하나가 마치 미술 작품을 큐레이팅하듯이 선정한 것들이라 책 읽는 취향만 맞는다면 더할 나위없이 팬이 될 수 있는 서점이었다. 내부 공간은 요즘 트렌드에 맞게 아기자기한 소품들로 채워져 있었다. 아직 생긴지 얼마 되지 않아서인지 책방무사만의 컨셉이라던지, 일관된 방향성을 찾기는 어려웠지만 달리 생각해보면 그런 컨셉을 찾는 것 자체가 무의미해 보이기도 했다. 책방무사(無事)는 단어 그대로 하루하루 무사하길 바라며 소소하게 잠시 들렀다 가는 공간이라 볼 수 있다. 운 좋게 내 취향의 책을 발견하면 좋은거고, 설사 아니더라도 또 그런대로 좋은 공간인 것이다.


이런 생각에 미치자 내부를 꾸며놓은 여러 소품들이 왠지 본래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안정적으로 보였다. 책의 종류들도 대형 서점에서는 쉽게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주제의 책들이 많았다. 사실 이런 책들은 동네 서점에서 사서 봐야 제 맛인 것 같기도 하다. 나도 덕분에 있는지조차 몰랐던 일본 문화 관련 잡지를 사왔는데 아마도 정기 구독을 신청하지 않을까 싶다. 그만큼 숨겨져있는 알짜배기 책도 있다는 이야기이다. 또 언제 가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주말에 안국역, 인사동쪽으로 갈 일이 있으면 종종 들르게 되지 않을까 싶다. 산책하고 온 기분이 드는 공간이다.





주인의 취향이 고스란이 반영된 소품들. 나는 예술하는 사람들의 이런 마이너하면서도 개성있고, 독특해보이는 취향을 선망한다. 어쩌면 내가 지극히 제도권 속에서 안정감을 가지며 메이저한 삶을 꿈꾸는 사람이라 다른 극단에 위치한 것에 대한 선망이 생긴 듯하다. 도대체 저런 것들은 어디서 사오는 것인지 나로서는 도저히 알 수가 없다. 나도 여행가면 사오고 싶은데 내 눈에는 잘 안띄더라. 그만큼 세상보는 시각의 범위가 다르다는 의미일 것이다. 



남자들만 있을줄 알았는데 내가 갔을 때는 전부 여자 손님들 뿐이었다.





밖에도 소품 하나하나가 대충 만든 듯하지만 오히려 그런 점이 친근감을 불러일으킨다. 오래 사용한 가죽 지갑같은 느낌이라고나 할까. 너무 규격화되고 새 것 느낌나는 것들은 가끔 범접하기 어려울 때가 있는데 그런 점에서 이런 요소들은 첫 방문자들에게도 특유의 어색함을 지워주고 편한 느낌을 줄 수 있을 것 같다.


p.s. 



1. 책방무사에서 사온 책이다. 『독서는 절대 나를 배신하지 않는다』는 제목이 내가 예전부터 입버릇처럼 혼자 되뇌이던 말, '내 머리 속에 든 것은 절대 나를 배신하지 않는다'와 너무 비슷해서 친근한 마음에 샀다. 근데 정작 이 책이 나를 배신했다. 일본의 대학 교수님의 독서법은 어떤지 궁금했는데 그 내용은 몇 페이지에 불과하다. 전형적인 출판사의 광고 카피에 낚인 격이다.


2. Boon 잡지는 일본 문화와 관련된 잡지로 매월마다 주제가 다르다. 나는 <시각 문화로 보는 현대 일본>이라는 타이틀에 이끌려 과월호를 사왔다. 필진 구성과 글의 소재들이 아주 탄탄하여 마치 학회지가 재밌게 꾸며진 듯한 느낌이다. 정기 구독할 생각까지 들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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