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 비판하는 글을 지양하는 이유

본래 무언가를 비판하기 위한 글은 칭찬하기 위한 글보다 쓰기 쉽다. 특히 그 대상이 특정 인물의 글이라면 더욱 쉬워진다. 비판의 대상이 된 인물과 글은 비유하자면 야구에서 타구를 날린 타자이다. 타자는 그라운드로 안타를 친 이후에 할 수 있는게 없다. 하지만 수비수는 타구의 방향에 따라 움직이고 그것을 아웃시킬 수 있다. 즉 비판의 대상이 된 글은 이미 그 사람의 손에서 떠난 상태이기 때문에 더 이상 주워담을 수 없는 대신 비판하려는 자는 글의 하나하나를 다 따져보고 근거를 찾은 후 논리적으로 무장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진 상태이다. 여기에서 시간은 굉장한 위력을 지닌다. 그래서 글 하나하나를 짚어보며 비판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쓰기 쉬운 글이라 생각한다.


인간은 사상적인 면에서 모든 것이 융합되어있는 존재다. 그러므로 이 행동은 A이고, 저 행동은 B이다라고 단순하게 규범지을 수 없다. 듣고 보면 당연한 말이겠지만 우리는 이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너무 당연해서 쉽게 잊어버리는 전제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동아시아의 문인화는 유학을 기본 사상으로 삼은 사대부가 그린 그림을 의미한다. 따라서 표면상으로는 문인화가 유교적 가치를 이미지화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런 사대부들도 비공식적으로는 불교와 도교적 가치를 학습하고 체화시켜 삶에 투영하고자 노력했기 때문에 이런 사람들이 그린 문인화를 단순명료하게 유학 그림으로 규정지을 수 없다.


같은 맥락으로 특정 인물의 말과 행동에 대해 규정짓고 비판하는 것은 어찌 보면 굉장히 무책임한 행동이자 폭력일 수도 있다. 아무리 객관적인 근거로 무장하고 객관적으로 비판한 것이다 할지라도 사람의 글은 결코 객관적일 수 없다. 각각 자신이 자라온 사회와 경험의 영향을 받으며 형성된 주관적 생각으로 쓴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비판의 글을 써야하는 상황이라면 비판 못지않은 존중의 마음을 글에 함께 담아야한다. 그 어떤 것보다 맥락을 고려해줘야하는게 인간의 생각이므로 글의 문장 하나하나 짚어가며 소위 '까는 것'은 내 상식으로는 공부하는 사람이 할 행동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저 지적허영심에 충만해보일 뿐이다. 공부는 지식을 쌓는 것이 1차 목표이지만 이를 넘어 지성을 갖추도록 노력하는 것을 최종 목표로 삼아야하기 때문이다. 비판의 대상으로 삼은 글이 공공성을 지녔다고해도 결국 한 개인의 생각이 반영된 것이며 따라서 생각의 다양성 측면에서 존중받을 권리가 있다. 물론 이렇게 보호받기 위한 글이 되려면 앞서 합리적이고, 도덕적 상식에 어긋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 전제로 갖춰져 있어야한다.


개인적인 바람을 덧붙여 설명하자면, 나 역시 글을 쓰다보면 비판의 글에 대해 유혹을 느낄 때가 종종 있다. 나와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의 글이라던가, 사회 부조리 등을 접할 때 그러하다. 이 중에서 특히 다른 주장을 하는 글을 하나하나 짚어가며 비판하는 글만큼은 지양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생각이다. 대신 칭찬하는 글을 많이 쓰고 싶다. 인간의 본성이 그러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대개 인간은 안좋은 것을 손쉽게 보고, 나보다 잘 하는 점과 장점은 눈에 쉽게 들어오지 않는다. 이러한 명제는 그만큼 칭찬의 요소를 찾아내기 위해서는 학식과 인품이 함께 동반 상승해야 가능하다는 뜻으로 해석 가능하다. 그래서 나는 비판의 글보다 칭찬의 글을 잘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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