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에는 경중이 없다. 그럼에도.



1. 개인


이번에 벌어진 파리 테러. 충격이다. 불과 얼마 전에 그곳에 있었던 탓인지 그 충격이 와닿는달까. 근데 그렇다고 해서 프로필에 프랑스 국기를 덧입히며 파리에서 찍었던 감성적인 풍경 사진을 올리며 애도의 표출까지는 하지 못하겠다. 애도하는 마음을 꼭 그런 식으로 내보일 필요도 없고 말이다. 시리아, 팔레스타인 등 여러 나라에서 벌어진 민간인 학살에 대해 우리가 언제 이렇게 애도를 해왔었냐는 자조 섞인 생각도 든다.


전세계를 슬픔에 잠기게 하고 시리아 난민 수용 문제를 진일보시킨 아일란의 죽음 역시 우리나라에서는 큰 이슈가 되지는 못했다. 최소한 SNS상에서는 파리의 경우처럼 호들갑스러운 애도의 물결이 흐르지 않았다. 게다가 파리에 테러가 벌어졌던 그 다음 날 우리나라 수도 한복판에서는 공권력에 의한 희생이 또 벌어졌음에도 이에 대한 애도는 커녕 언급하는 것조차 파리 얘기에 묻혀버린 듯하다.


이런 분위기로 미루어볼 때 혹 문화적 허영심의 대표적 국가 중 하나인 프랑스라서 애도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며 스스로 판단해 볼 필요가 있다. 인간에 대해 이해하고, 결국 자기 자신에 대해 직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인문학의 목적이다. 지금껏 불었던 인문학 열풍은 역시 허상이자, 자신을 과시하기 위한 악세사리에 불과했다는 생각이 든다.


2. 국가


세계 곳곳에 있는 랜드마크마다 프랑스 삼색을 입힌 사진을 봤다. 보면서 든 생각은 애도에도 경제, 문화 등을 총합한 국력이 작용한다는 점이었다. 프랑스는 테러를 당해도 알아서 잘 해결할 수 있는 국가이다. 그래서 괜한 일에 휘말릴 걱정없이 마구 애도해도 된다는 정치적 계산을 한게 아닐까 싶다. 오히려 이 참에 프랑스 마음에 드는 행동으로 비춰지길 바라는 국가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반대로 시리아나 팔레스타인 민간인 학살에 대해선 난민 수용 문제도 있고, 이스라엘 눈치도 봐야하기 때문에 섣불리 애도 표명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애도에도 국력에 따른 정치적 계산이 들어간다고 할 수 있다.


애도와 동정도 힘이 있어야 받는 세상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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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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