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을 얻은 대신 음미할 시간을 내어주다.

호랑이가 틈만 나면 장가가던 런던의 노팅힐에서.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여행지에서 사진을 거의 찍지 않았다. 미술사를 전공하면 국내, 해외 답사를 자주 다니게 되는데 다들 비싼 DSLR을 들고 이리저리 사진 촬영에 몰두하는동안 나는 끽해야 스마트폰으로 몇 컷 찍고 유유자적 돌아다니는 식이었다. 박물관에 있는 카페에 가서 커피를 마시다가 다시 전시실을 둘러보다가 혼자 이리저리 돌아다니기만 할 뿐 다른 사람들처럼 전투적으로(?) 사진 촬영하는 것에 목숨걸지는 않았다. 그래서인지 후배들이 나를 찾을 땐 항상 카페 아니면 뮤지엄샵으로 오곤 했다.


답사도 공부인데 어찌보면 게을렀다고 볼 수도 있다. 어쩌면 현장에서 직접 촬영하는 것이 훨씬 좋은 시각 자료가 되는 도자기나 조각 전공자들과 달리 나는 대부분 유리 진열장 안에 들어가 있어 논문에 첨부할 때 차라리 도록을 스캔하는게 좋을 때가 더 많은 회화사 전공이라는 점이 이러한 행동에 한 몫 한게 아닐까 싶다. 더불어 사진으로 남길 시간에 조금이라도 이 멋진 풍경과 미술 작품을 눈에 담는 편이 더 좋고, 제 아무리 사진을 멋지게 촬영한다해도 내 기억을 프레임 삼아 떠올리는 풍경 이미지만 못하다는 약간의 까칠함도 작용했다(물론 지금도 이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그러나 내 인생의 향방이 정해진 이후 여행 경험이 점점 늘어만 가면서 내 기억의 용량도 한계에 이르렀다는 일말의 불안감이 불현듯 들기 시작했다. 시간이 갈수록 전시를 보는 횟수는 늘어만 가고, 여행의 주기는 짧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능하면 나의 행적을 글로 남겨두고 싶은 욕심이 생기면서 사진은 언제고 내 글의 좋은 소재가 될 수 있다는 편의성에도 눈을 돌리게 되었다.


그래서 이제는 가능한 사진을 많이 찍어두려 노력한다. 그만큼 풍경과 작품을 음미하는 시간은 줄었지만 반대 급부로 좋은 사진을 얻기 위한 나의 시선은 예전보다 더욱 날카로워지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가 팔을 내어주고 허리를 벤다는 의미의 '육참골단'이 된 것인지, 아니면 나 역시 사진에 집착하는 흔한 여행객이 된 것인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신고

아르뜨

Curator, Art History, Exhibition, Museum, Gallery, Book, Stationery...

    이미지 맵

    일상/사진 한 장 다른 글

    댓글 0

    *

    *

    이전 글

    다음 글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