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우먼 인 골드(Woman in Gold)를 보고


영화 <우먼 인 골드(Woman in Gold)>를 시사회에서 보고 왔다. 이런 영화가 개봉하는지조차 몰랐던터라 사전 지식없이 영화를 보게 되었다. 그저 구스타프 클림트에 관한 영화라길래 책으로는 알 수 없는 화가에 대한 어떤 에피소드라도 건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약간의 기대만을 가지고 영화를 봤다. 영화 <우먼 인 골드>는 구스타브 클림트의 일대기에 관한 영화는 아니다. 그래서 클림트 그림에 대해 지식을 쌓을 수는 없다. 그러나 이 영화는 걸작을 둘러싼 인간의 소유욕과 미술품 반환 논쟁, 제2차 세계대전이 끼친 막대한 문화적 피해에 대해 절감할 수 있게 해준다. <우먼 인 골드>는 본래 소장자였던 홀로코스트의 피해 유대인이 소유권을 주장하며 환수하려는 노력이 줄거리의 큰 줄기를 이루는 영화다.



영화의 제목인 <우먼 인 골드>는 구스타프 클림트의 최고 걸작으로 손꼽히는 <우먼 인 골드(The Woman in Gold)>를 그대로 차용한 것이다. <우먼 인 골드>는 구스타프 클림트가 1907년에 자신의 후원자이자 지금의 관점으로 봐도 너무나도 기품있고 아름다운 유대인 여인인 아델레 블로흐-바우어(Adele Bloch-Bauer)를 그린 초상화이다. 그래서 본래 작품의 제목도 <아델레 블로흐-바우어의 초상(Portrait of Adele Bloch-Bauer)>이라고 하는게 맞다. 이 영화는 나치의 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피신하여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아델레 블로흐-바우어의 조카를 주인공으로 하였으며 주인공이 <아델레 블로흐-바우어의 초상>의 본래 소유권을 주장하며 이전까지 소장하고 있었던 오스트리아의 벨베데레미술관과 법정 투쟁을 했던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되었다.


하지만 이 영화를 다큐멘터리 혹은 법정 투쟁 영화로 볼 수는 없다. 왜냐하면 그림의 소유를 둘러싼 소송이 진행되는 사이사이에 홀로코스트의 참상이 적절하게 가미되며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의 고통을 실감나게 전달해주기 때문이다. 또한 나치가 저지른 문화적 파괴 행위에 대한 비판을 넘어 서구 열강이 폭주하던 20세기 초의 문화재 약탈에 관해 다시 고민할 수 있게 해주는 명민함도 갖추고 있다



'엘긴 마블'이라는 단어가 있다. '엘긴 마블'은 제국주의 시절 영국의 외교관이었던 토마스 부르스 엘긴경이 영국으로 약탈해 가서 현재 영국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의 부조를 의미하는 단어이다. 하지만 '엘긴 마블'은 사전적 의미를 떠나 더 큰 의미를 담고 있는 단어로 볼 수 있다. 현재 문화재 반환이 전세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가운데 필수 불가결하게 논의될 수 밖에 없는 소유권 논쟁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쉽게 설명하자면 문화재를 원소유 국가에게 돌려주는게 맞는지, 아니면 문화재를 잘 보존하고 후손에게 전승시키는데 기여할 수 있는 현소유 국가가 그대로 소유하고 있는게 맞는지에 대한 논쟁을 의미한다. 이러한 논쟁은 현소유 국가(19세기 말, 20세기 초에 걸쳐서 다른 나라의 문화재를 약탈해갈 수 있었던 힘을 가졌던 국가, 그래서 이를 바탕으로 현재도 선진국이 될 수 있었던 국가)들이 자신들에게 유리한 쪽으로 이끌기 위해 짠 프레임의 산물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양측 주장 모두 쉽게 간과할 수 없는 무게를 지니고 있기에 모든 문화재 반환 사례에 일괄적으로 적용할 수 없는 어려운 문제인 것만은 분명하다.



영화 <우먼 인 골드>는 문화재 반환, 소유권 논쟁이 왜 그렇게 어렵고 시간이 오래 걸릴 수 밖에 없으며 양측의 배려와 대승적인 판단이 필수적으로 가미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실감나게 보여준다. 더불어 미술품 소유와 환수에 대한 욕구를 단순한 소유욕으로 치부할 수 없고 미술품과 관계되어 있는 인간들의 여러 감정과 에피소드를 이해해야 비로소 해석할 수 있다는 점을 주인공의 복합적인 감정을 통해 보여준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미술품은 인간에 대해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도구이자 수단이라 할 수 있고, 그래서 이를 연구하는 미술사를 인문학의 영역에 포함시키는 것이다.


이 영화를 통해 나는 미술품 향유가 단순한 예술 취미로 접근될 때도 있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평생을 그리워해온 가족의 일부로 여겨질 수도 있고, 고통의 역사를 이겨낼 수 있는 강한 의지의 원천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영화 속 주인공의 모델이 된 인물의 이후 행적을 보니 더욱 그러했다. 꼭 미술사를 전공하지는 않더라도, 이 분야를 업으로 삼고 싶지는 않더라도 예술과 가까이 하고 싶은 이들에게 영화 <우먼 인 골드>를 추천하고 싶다. 예술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는 영화이다.



p.s.


영화에서 볼 수 있듯이 오스트리아 벨베데레미술관의 구스타프 클림트 작품에 대한 집착에 가까운 애정은 실제 모습으로 봐도 좋다. 왜냐하면 오스트리아가 낳은 세계적인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의 대표 작품들은 절대 외국 대여를 허가하지 않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클림트의 작품을 보고 싶으면 오스트리아로 직접 와서 보라"이다. 그 정도로 오스트리아의 클림트 사랑은 유별나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난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클림트 전시는 특별히 신경써서 챙겨보지 않는다. 어쩌다 기회되면 갈까말까이다. 어차피 가봤자 미술사적으로 의미있거나 감동을 주는 대표작은 하나도 없이 습작 위주로 전시해놓은게 뻔한데다가 이제는 우리나라의 전시 트렌드도 유명 화가 이름만 대면 흥행에 성공하는 풍토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신고

아르뜨

Curator, Art History, Exhibition, Museum, Gallery, Book, Stationery...

    이미지 맵

    일상/영화, 음악 그리고... 다른 글

    댓글 0

    *

    *

    이전 글

    다음 글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