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사 공부의 기본 자세에 대하여


1.

동양 회화를 분석할 때는 그림 뿐만 아니라 그림 위에 써있는 제발과 인장을 모두 해석해야 한다는 것을 전공자라면 상식적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종종 제발과 인장 해석에 더 집중한 나머지 정작 그림의 양식 분석은 뒷전으로 미루는 것을 볼 수 있다. 제발이라는 텍스트와 소유자가 확실한 인장을 해석하면 그 내용이 명확하기 때문에 그림에 나타나 있는 화가 특유의 필선이라던지, 채색하는 방식 같은 것들을 간과하고 마는 것이다. 더구나 그 작품이 최근에 발견된 작품이라면 더더욱 확실하게 양식 분석을 해서 일단 그 작가의 진작이라는 것을 규정지은 다음에 제발과 인장이라는 그림의 부연 요소들을 해석해야 한다. 미술사에서 작품 분석을 등한시해도 된다면 왜 미술사라는 학문이 필요하겠는가. 그냥 어문 계열 전공자들이 번역해서 끝내면 될 것을.


이렇게 작품 분석을 강조하는 이유는 지극히 상식적인 이유 때문이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그림을 위조한 다음에 가짜 필체와 인장으로 그 그림 위에 써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림에 써있는 글씨와 인장 만으로는 그 작품이 진작이라고 단정지을 수 없으며 작품 분석까지 행해져야 비로소 그 화가의 진짜 작품으로 결론내릴 수 있을 것이다. 미술사라는 학문을 왜 하는지 본연의 의무를 망각해서는 안될 것이다.


2.

한국에서 외국의 미술사를 공부할 때는 한계가 있다. 어지간해서는 본래 나라의 연구를 뒤따를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에서 한국미술사를 공부할 때는 자연스럽게 교보문고 등을 다녀가면서 접한 전공 외의 책들을 접하게 되고 자연스레 연구할 때 힌트를 얻을 때도 있듯이 보다 폭넓은 자료의 활용이 가능한 반면, 우리나라에서 외국의 미술사를 연구할 때는 지리적 여건상 전공 관련 서적에 치우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외국에서도 인정받을 만한 참신한 연구가 나오기가 상당히 어렵다. 이러한 이유 때문인지 발표 중에는 외국 작가와 작품에 대한 참신한 해석이 돋보이는 발표도 있었지만 이는 극히 일부였을 뿐이고, 대부분은 기존에 공인받은 학설의 재확인에 그치는 정도가 많았다. 심지어 전공 진입자가 보는 개설서의 이론을 재확인하는 내용도 있었다. 다만 그 결론을 내리면서 그동안 우리나라에서 소개되지 않은 작가와 작품을 활용했기 때문에 얼핏 보기에는 새로운 연구같아 보였지만 결국 결론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는 결론일 뿐이었다.


혹은 그저 작가의 연대기에 맞춰서 작품을 소개하는 경우도 있었다. 학술 발표라는 무게감을 실감했다면 전시회에서 작품 소개하듯이 작품을 제작할 당시의 에피소드를 들려주는 것보다 더 중요한 분석이 수반되어야 하지만 몇년에 이 작가가 누구를 만났고, 둘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고, 그래서 이 그림을 그렸다는 식의 도슨트 설명을 왜 학술 발표에서 하는지 의아스러웠다. 대개  외국 미술사 연구 발표에서 그러했다. 도슨트 설명과 미술사 연구는 다른 영역의 일이다. 만약 학술 발표에서도 작가의 연대기적 발표가 가능하다면 미술사가 왜 필요하겠는가. 그냥 세계 위인 전기나 읽어보면 되지(어릴 때부터 아리송했던건데 세계 위인 전기 시리즈에 특별한 인류애적 공로가 없는 예술가들이 왜 포함되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3.

미술사 연구에서 기본은 양식 분석이다. 양식 분석을 기본으로 정신사적인 것까지 추출해내는 것을 목표로 해야한다. 하지만 너무 당연한 것으로 여겨져서인지 양식 분석을 등한시하거나 축소시킨채 곧장 정신사적인 것만을 발표해서는 안된다. 에르윈 파노프스키는 전도상학, 도상학, 도상해석학의 관계에 대해 정의내릴 때 양식 분석에서 시작하여 도상을 해석하고 최종적으로는 해석한 도상해석이 전도상학적 단계와 부합하는지 검토해야한다고 하였다. 전도상학적 단계란 양식 분석을 의미한다. 양식 분석에서 출발하여 그림에 표현된 도상들이 올바르게 해석되었는지 다시 당시 미술의 시대적 특성과 일치하는지를 검토해야되는 것이다(물론 파노프스키의 이 이론도 모든 미술에 적용시킬 수 있을 정도로 완벽한 것은 아니지만). 결국 미술사적 해석은 다시 양식 분석으로 귀결되어야 오류를 최소화시킬 수 있다.


하지만 시간의 제약, 글 분량의 제약 때문인지 화가가 지녔던 특정 사상을 중심으로 검토하는 것을 발표의 목표로 삼았음에도 그 사상이 그림에 어떻게 발현되었는지에 대한 분석은 생략된 것을 보게 되었다. A라는 화가가 이러이러한 시대적 배경 때문에 B라는 사상을 갖추게 되었다는 것을 밝히는 것까지는 좋았으나 미술사 연구라면 이러한 사상이 작품의 양식 변화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게 되었는지까지 양식 분석을 통해 밝혀야 완성도가 높았을텐데 아쉬웠다.


4.

논문을 쓰다보면 자신이 주제로 삼은 화가와 작품을 본래 생각보다 더 소중하게 여기게 되면서 애정이 생기게 된다. 사람이 하는 일이다보니 이런 애정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누구보다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해야할 전공자, 연구자라면 스스로 애정을 자제할 수 있도록 냉정해져야 한다. 그래서 감상자가 아니라 연구자인 것이다. 이것을 제어할 수 없다면 연구에서도 너무 사소하고 상식적인 선에서 해결할 수 있는 것도 스스로 어렵게 만들어 버리게 된다. 냉정하게 작품 분석을 함으로써 작가에 대한 평가를 내려야 하는 연구자가 스스로 연구 대상을 지나치게 이상화시켜버리는 일이 되고만다. 가령 A라는 화가가 어떤 주제의 그림을 그렸는데 그 주제가 옛날 영웅의 고사와 관련된 것이라면 마치 A라는 화가가 그 영웅에 대한 존경의 의미로 그림을 그렸다고 단정지어버릴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주제가 알고보니 당시 사람들 사이에서 인기 있었던 책의 한 챕터였다면 연구의 양상은 크게 달라진다. 그저 사람들에게 인기있는 주제이다 보니 화가가 그린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만약 앞의 이유로 그림을 그린 것이라고 주장하고 싶다면 보다 확실한 근거를 제시하는게 선행되어야 한다. 이 작업이 선행되지 않는다면 이후의 노력은 헛된 노력이 되기 쉽상이다. 안타까운 결과가 생겨버리게 된다.


5.

발표와 글의 성격을 구분하지 않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연구 경력이 오래된 중진 학자가 아닌 경우에야 발표문을 읽으며 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머리말 읽겠습니다", "맺음말 읽겠습니다", "인용문 시작(문헌 기록 읽기 전에)", "인용문 끝(문헌 기록 다 읽고나서)" 등 발표문에 써있는 것을 곧이 곧대로 발표하는 것은 발표에 대한 개념이 없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아무리 발표문을 읽는다해도 발표답게 자연스러운 흐름이 이어지도록 글을 다듬었어야 한다. 이것은 불성실한 것으로 평가받을 뿐이다. 애써 밤새워가며 준비했을텐데 이런 기본적이고 사소한 것으로 발표 전체에 대한 인상이 안좋게 결정나버리면 억울하지 않은가.


6.

미술사 발표는 학문의 특성상 슬라이드 발표가 주가 된다. 작품을 보여줘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렵게 찾은 작품을 소개할 때도 있고, 문헌기록을 최초로 선보이는 경우도 있다. 그런 경우에는 비슷한 주제를 연구하는 전공자라면 나중에 자신의 연구를 위해 탐이 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발표하는 중에 그 화면을 일일이 스마트폰으로 사진 촬영하는 것은 올바른 자세가 아니다. 나는 그런 행위를 치팅으로 간주한다. 정 필요하면 발표가 끝나고 발표자에게 부탁하면 될 일이 아닌가. 이번 학회 내내 작품과 문헌 기록 화면을 일일이 아이폰으로 촬영하는 남자를 봤다. 화면이 넘어갈 때마다 매번 팔을 치켜올려서 신경쓰이는 것도 불편했지만 그보다 나는 그 남자가 나중에 자신의 연구에 철저하게 각주 인용을 할지는 모르겠다. 그런 행위를 다른 사람들의 눈치도 보지 않는 자라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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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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