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문화 여행기 - 첫 번째. 서귀포 이중섭미술관

시험이 끝난 뒤 이번 학기도 잘 끝마쳤다는 자축의 의미로 뜻이 맞는 친구와 제주 여행을 다녀왔다. 평소 여행보다 뮤지컬이나 연극등을 보고 즐기는데 더 큰 만족을 느껴온, 사실 여행 준비과정에서 수반되는 지루함을 꺼려 온,  내가 친구와의 여행을 계획한 것은 다소 큰 모험이었다. 여행은 그 곳 사람들에 의해 전체의 인상이 좌우되는 경우가 많은데 제주에서는 조금은 느리고 자신만의 철학으로 빚어낸 은근한 내공을 가진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부부가 함께 계획한 제주 자전거 일주 여행에 급작스런 남편의 불참에도 혼자서 굳세게 자전거로 제주를 누비는 언니, 다소곳한 말씨로 자랑스런 제주도에서 일하는 자신의 직업에 대해 자부심 느끼신다고 술회하던 택시 기사님, 그리고 버려진 공간을 사들여 새로 단장하여 예술이라는 숨을 다시금 불어 넣어준 아리리오 김창일 회장님과의 우연한 만남까지.

 

여행 중 세 곳에 미술관, 박물관을 방문했다. 첫번째가 이중섭 미술관이었다. 서귀포항 근처에 숙소를 잡고 짐을 푼 뒤 이중섭거리가 시작되는 지점에 위치한 이중섭 미술관을 찾았다. 이중섭 거리에는 그의 그림의 소재들로 약간의 장식이 되어 있었다. 거리를 중심으로 꽤나 유명한 멋집, 맛집들이 즐비해 있었다.

 

이중섭은 가족, 물고기, 게, 달과 새, 연꽃, 천도복숭아 등 우리의 전통적 소재로 화폭을 채웠다. 향토적이고 서정적인 그림으로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작가 중 한명이며 6.25전쟁의 발발 속에 가족들과 뿔뿔이 헤어져 홀로 외롭게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그림으로 쏟아붓고, 결국 외롭게 숨을 거둔 작가이다.

 

 

 

높고 뚜렷하고 참된 숨결 나려나려 이제 여기에 고웁게 나려 두북 두북 쌓이고 철철 넘치소서

삶은 외롭고 서글프고 그리운것 아름답도다 여기에 맑게 두눈 열고 가슴환히 헤치다

 

미술관 아래에 제주에서의 11개월 피난 시절동안 이중섭과 그의 아내 아들 셋이서 지낸 생가를 둘러보았다. <소의 말>은 방 벽에 써져있던 것을 조카가 옮겨 번안했다한다. 미술관 곳곳에서 이 글을 찾아 볼 수 있다. 이중섭의 초상이 놓여진 제주 피난 시절 살았던 1.4평의 작은 방, 1.9평의 부엌. 이중섭이 작품활동을 한 그의 시대가 결코 그에게 녹록치 않았을 것임을 추측해 볼 수 있다. 그럼에도 고난한 삶 속에서도 스스로 작가로서의 강한 자부심은 아내 마사코(남덕)과의 편지에서 드러난다.

 

 

제주 이중섭 미술관은 과거 이중섭 작품없는 미술관이라는 오명을 쓰기도 했다. 현재 이중섭 박물관은 그 오명을 벗고 제주도의 노력과 기관과 개인의 기증을 통해 이중섭의 작품을 수집, 보존하고 있다. 박물관 내 작품을 촬영금지였다. 내년이 이중섭 탄생 100주년이기에 다음해에 이중섭 미술관에서 특별전시를 혹시 준비중이지는 않은지, 그의 역작을 이곳에서 볼 수 있는지에 대한 궁금증도 생겼다. 기증 작품전에 대해 예술작품 기증이 많은 사람들이 누릴 수 있는 '공공성'에 기인하고 또 좋은 선례가 이후 기증문화에 모범이 될 수 있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아내에 대한 사모의 마음을 담은 편지들이 전시되어있었다. 애정 충만한 편지엔 내용이 민망하다기 보다 약간의 부러움의 감정이 느껴지면서 마음이 참 예쁘다는 생각이 들게했다. '자신이 사랑하는 애처를 진심으로 모든 걸 바쳐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은 결코 훌륭한 일을 해낼수 없다.' 라는 구절에서 사모하고 그리워하는 마음이 고스란히 편지에 담겨있는 듯 했다. 그는 일본인 아내 마사코에게 이남덕이라는 한글이름을 지어줄 정도로 다정하고 또 다정한 사람이었다.

 

이중섭이 아내에게 보낸 편지 중 상단 3번째

 

유종옥, 황소인상

 

기증전에는 이중섭의 작품뿐만 아니라 이중섭을 모티프 삼아 작품 활동을 한 작가들의 작품들과 이중섭과의 교류가 있던 동시대 예술인들의 자취 또한 보여주고 있었다.

 

 

미술관, 박물관을 들릴 때 마다 기억할 수 있는 기념품을 사서 모아두는 것이 나만의 원칙이 되어, 찬란했던 사람 이중섭을 추억하기 위해 작은 노트 한 권을 샀다. 게와 물고기 그리고 아이. 이중섭이 그림에 소재로 반복해서 사용했던 것들이다. 이런 반복적인 소재의 사용이 그의 사후 많은 위작이 등장하는데 기인했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을까? 순수하게 그림을 그렸던 그에게 화폐가치에 눈이 멀어 이중섭의 작품들을 흉내낸 그림들의 존재를 모르는 편이 더 나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관람 후 올레매일시장에서 저녁을 먹고 숙소에서 하루를 마쳤다. 다음날 아침 제주 공항으로와 공항인근에 있는 넥슨컴퓨터박물관과 아라리오 뮤지엄으로 향했다. 보통의 박물관에 붙은 경고판인 '만지지 마시오'는 넥슨컴퓨터박물관에서 보기 드문 것이었다.(물론 만지면 안되는 역사적인 사료들도 있다.) 컴퓨터가 과거지향적으로 멈춰 있지않고 관람객들이 소통과 교감으로 다가설 수 있는 박물관을 지향하는 설립취지에 부합한 공간이었다. 어린아이들은 이것저것 누르고 만지고 눈을 반짝거리며, 장성한 어른들도 그곳에서 부끄럼없이 놀라하고 즐거워했다. 그 어른 중 필자도 포함된다. 넥슨컴퓨터박물관에 대한 더 많은 이야기는 다음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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