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s...우리는 분위기를 사랑해 by 오은

 

Igor Termenon, 2012- present, 2012

 

1년

 

1월엔 뭐든지 잘될 것만 같습니다

총체적 난국은 어제까지였습니다

지난달의 주정은 모두 기화되었습니다

 

2월엔

여태 출발하지 못한 이유를

추위 탓으로 돌립니다

어느 날엔 문득 초콜릿이 먹고 싶었습니다

 

3월엔

괜히 가방이 사고 싶습니다

내 이름이 적힌 물건을 늘리고 싶습니다

벚꽃이 되어 내 이름을 날리고 싶습니다

어느 날엔 문득 사탕이 사고 싶었습니다

 

4월은 생각보다 잔인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단 하나,

한참 전에 이미 죽었기 때문입니다

 

5월엔 정체성의 혼란이 찾아옵니다

근로자도 아니고

어린이도 아니고

어버이도 아니고

스승도 아닌데다

성년을 맞이하지도 않는 나는,

과연 누구입니까

나는 나의 어떤 면을 축하해줄 수 있습니까

 

6월은 원래부터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 해서

내가 꿈꾸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7월엔 뜨거운 물에 몸을 담가봅니다

그간 못 쓴 사족이

찬물에 융해되었습니다

놀랍게도, 때는 빠지지 않았습니다

 

8월은 무던히도 덥습니다

온갖 몹쓸 감정들이

땀으로 액화되었습니다

놀랍게도, 살은 빠지지 않았습니다

 

9월엔 마음을 다잡아보려 하지만,

다 잡아도 마음만은 못 잡겠더군요

 

10월이 되었습니다

여전히, 책은 읽지 않고 있습니다

 

11월이 되었습니다

여전히, 사랑은 하지 않고 있습니다

밤만 되면 꾸역꾸역 치밀어오릅니다

어제의 밤이, 그제의 욕심이, 그끄제의 생각이라는 것이

 

12월엔 한숨만 푹푹 내쉽니다

올해도 작년처럼 추위가 매섭습니다

체력이 떨어졌습니다 몰라보게

주량이 늘었습니다 그런데도

잔고가 바닥났습니다

지난 1월의 결심이 까마득합니다

다가올 새 1월은 아마 더 까말겁니다

 

다시 1월,

올해는 뭐든지 잘 될 것만 같습니다

1년만큼 더 늙은 내가

또 한번 거창한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2월에 있을 다섯번의 일요일을 생각하면

각하(脚下)는 행복합니다

 

나는 감히 작년을 승화시켰습니다

 

오은,『우리는 분위기를 사랑해』

 

달이 바뀔 때마다 달력을 넘기듯이 저는 시인 오은의 1년이라는 시를 읽습니다. 1월부터 12월까지의 누구나 한번쯤은 했을 법한 생각과 다짐들이 '1년'이라는 오은의 시에 고스란히 담겨있습니다. 그의 시처럼 9월엔 마음을 다잡아보려 했지만 마음이 더 복잡해졌습니다. 읽고 싶은 책과 읽어야 하는 책은 책상에 쌓여있지만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2014년 1월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10월이 되었습니다.10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제가 무엇을 했는지 되돌아봅니다. 저는 졸업을 앞둔 4학년이라는 신분으로 졸업 후의 삶에 대한 막막함과 꼬리에 꼬리를 무는 고민들과 함께 뭐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영영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연애도 마침표를 찍었습니다. 여러모로 힘든 시간이지만 성숙해지는 것 같아 다행입니다.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10월을 맞이하는 지금, 무언가를 얻으셨고 무언가를 잃으셨는지 궁금합니다.

 

이번 해도 이제 100일도 채 남지 않았습니다. 앞만 보고 열심히 달려와 조금은 지쳤을지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오은의 시집인『우리는 분위기를 사랑해』와 박가을의 노래 '일어서자'를 추천하며 짧은 글을 마칩니다. 우리 함께 일어서요.

 

 

 


우리는 분위기를 사랑해

저자
오은 지음
출판사
문학동네 | 2013-04-10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모든 것을 지시할 수 있지만, 어디에도 다다를 수 없는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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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댓글 2

      • 우리는 분위기를 사랑해라는 표현이 너무 잘 어울리는 계절이네요. 저도 영화를 보든 레스토랑을 찾든 분위기를 먼저 보는 사람이라 참 와닿는 표현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거기에 저도 보미님처럼 읽을 책들은 점점 쌓여가는데 읽지는 않고 탑쌓기만 하고 있네요. 부지런히 읽어야겠어요 ㅎ

      • 가을이라는 분위기는 설렘과 쓸쓸함이 공존하는 것 같아요. 같이 부지런히 책을 읽어요. 독서의 계절이니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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