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의 쉼표(,) <밤 열한 시>에 나를 생각하다_<밤 열한 시>,황경신


북적이는 만원 버스를 타고 집에 도착한다. 옷 사이에 스며있는 세상 냄새를 털어내고 옷걸이에 걸어둔 뒤 시간의 무게로 짓눌려져 있던 내 몸을 뜨거운 물 속에 천천히 눕힌다. 그리고는 어젯밤 뒤척임의 흔적이 아직 남아 있는 침대 속으로 들어가 베개에 기대여 작은 책을 집어든다.

 

그래. 지금이 바로 밤 열한 시다.

 

그 어떤 하루를 보냈든 간에 대부분의 사람들의 밤 열한 시는 거의 같은 모습일 것이다. 하루의 고단함을 침대에 조용히 내려놓고 아주 잠깐의 쉼을 가질 수 있는 시간. 나의 열한 시도 그렇고 너의 열한 시도 그렇다.

 

 

 

머리맡에 두고 자기 전 잠깐 동안 눈을 기울일 수 있는 책. 황경신 작가의 밤 열한 시는 바로 그런 책이다. 작가가 삼년간 문득문득 떠올렸던 잡념들이 한권의 책으로 묶여졌다. 신기하게도 묶어보니 이 잡념들이 저명한 철학자의 이론 같기도 하고, 유명한 작가의 소설 같기도 하다.

 

잡념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철학적이고 또한 아름답다. 문구마다 센치한 감성이 풍부하게 느껴진다. 어려운 내용이 아닌, 누구나 한번쯤은 밤에 떠올려봤음직한 생각들이라서 더 마음속에 와 닿는다. 하지만 글들이 감성놀이를 하고 있는 삼류소설처럼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황경신 작가 특유의 담담한 문체 때문인 것 같다. 그 담담함 속에서 느껴지는 간지러운 감성은 이 책을 놓을 수 없게 하는 마력 같기도 하다.

 

 

 

밤 열한 시. 그 잠깐의 쉼 속에서 당신은 무엇을 떠올리고 있는가.

 

우리는 초단위로 빠듯하게 살아온 시간의 굴레를 벗어나 이라는 명목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를 얻곤 한다. 이런 쉼의 시간동안 떠올리는 대부분의 생각들이 어쩌면 가장 나다운 생각들이 아닐까. 누군가의 억압과 참견없이 시간의 쫓김없이 시끄러운 소음없이 오로지 나만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  바로 쉼의 시간. 밤 열한 시가 그런 시간이다.

 

 

 

 

밤 열한 시

하루가 다 지나고

또 다른 하루는 멀리 있는 시간

그리하여

가던 길을 멈추고

생각을 멈추고

사랑도 멈추고

모든 걸 멈출 수 있는 시간

 

참 좋은 시간이야

밤 열한 시

 

_<밤 열한시>황경신 

나도 일기를 즐겨쓰곤 하지만 내 일기는 단순한 하루일과에 대한 푸념 투성이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에는 너무 부끄러운 내용들 투성이지만 잠깐이라도 내 이야기를 글자로 털어놓고 나면 하룻동안 묵혀있던 스트레스들이 눈녹듯 사라지는 느낌이 든다. 내 지인 중 누구는 라디오를 참 좋아해서 밤 열한 시쯤 나른한 목소리로 독백을 읽어내려가는 DJ의 목소리를 자장가로 삼는다. 그리고 우리 어머니는 침침한 눈 위로 돋보기 안경을 올린 뒤 침대에 앉아 아들과 딸에게 줄 손가방이며 필통을 손수 바느질 하시다가 잠이 드신다. 각자 다른 모습이지만 밤 열한시, 그 시간이 되면 모든 것을 멈추고 나만의 쉼터를 찾아가는 것 같다.

 

바쁨이 미덕인줄 아는 현대 사회에서 내 자신만을 위한 시간을 가져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모두들 내 인생에서 내가 없어진지 오래일 것이다. 하지만 밤 열한 시, 잠들기 직전 그 잠깐의 시간동안이라도  나에게 집중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오늘 다가오는 밤 열한 시에 당신만을 위한 쉼표를 찾아보길 바란다.

신고

아르뜨

Curator, Art History, Exhibition, Museum, Gallery, Book, Stationery...

    이미지 맵

    일상/한 권의 책 다른 글

    댓글 3

    *

    *

    이전 글

    다음 글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