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미륵반가사유상을 보면 그리스 로마 조각상에서 쉽게 찾을 수 없는 초월성이 느껴진다.

 

"나는 지금까지 철학자로서 인간 존재의 최고로 완성된 모습을 표현한 여러 모델의 조각들을 접해왔습니다. 고대 그리스의 신상, 로마시대의 뛰어난 조각, 기독교적 사랑을 표현한 조각들도 보았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조각들에는 아직 완전히 초극되지 않은 어딘지 지상적인 감정과 인간적인 자취가 남아 있었습니다.

 

이성과 미의 이데아를 표현한 고대 그리스의 신상도 로마시대 종교적인 조각도 인간 실존의 저 깊은 곳까지 도달한 절대자의 모습을 나타낸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 미륵반가상에는 그야말로 극도로 완성된 인간 실존의 최고 이념이 남김없이 표현되어 있음을 봅니다. 그것은 지상의 시간과 속박을 넘어서 달관한 인간 실존의 가장 깨끗하고, 가장 원만하고, 가장 영원한 모습의 상징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오늘날까지 몇십년간 철학자로 살아오면서 이 불상만큼 인간 실존의 진실로 평화로운 모습을 구현한 예술품을 본 적이 없었습니다. 이 불상은 우리들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영원한 평화의 이상을 실로 남김없이 최고도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독일의 실존주의 철학자, 카를 야스퍼스(Karl Jaspers).

유홍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일본편3, p. 27-28 재인용.

 

우리나라 최고의 불상으로 대개 석굴암 본존불상과 국보 83호 미륵반가사유상을 꼽는다. 두 작품 모두 신라의 불교미술품으로 이상적인 사실미를 잘 보여준다고 평가받는다. 그리고 일본의 국보 제1호로 지정되어 있는 고류지(廣隆寺) 목조미륵반가사유상 역시 신라가 일본에 선물로 준 작품으로 추정된다. 일본에 없는 적송으로 제작된 점, 국보 83호 미륵반가사유상과 양식상 유사한 점 등을 이유로 말이다.

 

나는 불교 신자가 아니다. 마인드도 여느 한국의 젊은 사람답게 철저히 서양적이다. 좋아하는 미술도 서양미술이다(전공은 동양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륵반가사유상을 보면 인간성을 초월한 신의 이미지가 느껴진다. 이 땅 위에 안치된 것 자체가 이 조각상들을 욕보이는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그 이유는 이런 내게도 수 천년간 형성되어 온 한국적 DNA(유교, 불교, 도교에서 비롯된)가 존재하기 때문이 아닐까싶다. 즉 나의 껍데기가 아무리 서양적이라 해도 내면 깊은 곳 어딘가에서 비롯된 철저한 한국성 때문이라는 이야기이다.

 

그리스, 로마의 조각들을 보면 마치 조각같은 현대 이탈리아 남자들을 보는 듯한 아름다움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미술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인기가 많은 것이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일 뿐이지, 그리스, 로마인들이 표현하고자 했던 신성성까지는 느끼지 못했다. 인체의 극사실적인 표현 때문으로 생각했었는데, 카를 야스퍼스 역시 같은 것을 느꼈나보다.

 

오늘 그동안 별러왔던 유홍준 선생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교토편을 읽고 있는데 역시 명쾌하고 일본사에 대한 그 어느 책보다 재밌다. 이런 책을 보면 단순히 Job으로서 미술사를 선택하는게 아니라 진짜 학문을 하고 싶다는 욕심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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