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경자, 지극히 고독해 보이지만 아름다운 그녀의 작품 세계

<내 슬픈 전설의 22페이지>, 1977

 

고독하지만 그것마저 낭만이 된 아름다운 여인일까. 아니면 매우 아름다움에도 본질적으로 고독할 수밖에 없었던 외로운 여인일까. 천경자의 여인상을 처음 봤을 때 이런 고민을 했다. 그러나 결국에는 전자 쪽에 더 가까운 것 같다고 내 마음대로 결론지어 버렸다. 이는 그녀의 머리를 칭칭 감고 있는 뱀도, 아련한 색채의 한 송이 꽃도 아닌 인물의 고독하지만 공허함으로 점철되지 않은 시선이 나를 가장 먼저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여인은 머리에 화관 대신 뱀을 얹은 채 무서운 시선으로 정면을 응시하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내게는 아름답게 보였다.


그녀는 오십대 중반에 스물 두살의 나이였을 때의 자신를 이토록 외롭게 그려냈다. 사랑하던 동생의 죽음, 결혼의 실패와 첫 딸의 출산 등 그녀의 스물 두살은 화려한 나이테를 가진 그녀의 인생 중에서도 매우 절절한 아픔으로 새겨진 한 줄이었기 때문이다.



천경자. 한국 화단의 몇 안 되는 유명 여류 작가 중 한 명이다. 예술가였고, 자신의 삶 또한 한 편의 영화 속 이야기 같은 멋쟁이었지만 어찌 보면 그녀 역시 사랑에 울고 웃는 평범한 여자였다. 사랑 앞에 솔직했기 때문에 그녀는 그만큼의 슬픔을 더 안고 살아가야 했을 지도 모른다.

 

그녀는 사랑하던 이와의 이별이나 인생의 시련을 마주할 때마다 붓을 들어 그림에 담아냈다. 한 인간으로서 특히 한 명의 여자로서 굴곡이 많았던 인생은 그녀의 내면을 갉아먹기도 했지만 그 시련들은 되레 예술적 감수성의 원천이 되기도 하였다.

 

"내 온몸 구석구석엔 거부할 수 없는 숙명적인 여인의 한이 서려 있나 봐요. 아무리 발버둥쳐도 내 슬픈 전설의 이야기는 지워지지 않아요. 그저 태어날 때부터 타고난 팔자소관이려니 하고 생각하고 말지만 그러다 보면 또 다른 허망한 고독감에 또다시 서글퍼지고 말지요."

 

<길례 언니>, 1973


그녀의 작품 중에는 자화상을 비롯한 여인상이 많다. 특히 그녀는 70년대 초에 자신이 동경하는 여인상을 많이 그렸다. 가난 때문에 타지에서 간호부로 일하면서 동생들을 책임지는 가장이었던 길례 언니는 화가가 소학교 시절 동경했던 선배이다. 화가는 그런 길례 언니가 어느 날 고향 축제에 샛노란 원피스를 예쁘게 차려입고 온 모습을 잊지 못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천경자는 가족에 대한 사랑도 대단했다. 그런 화가가 겉으로는 아직 어린 소녀의 티를 벗지 못했음에도 가장의 역할을 다하고 있던 길례 언니를 이상적으로 생각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천경자는 길례 언니를 이상적인 여인상으로 삼아 시련이 있을 때마다 그녀를 통해 자신의 모정을 상기하며 마음을 정화하고자 했다.


<내 슬픈 전설의 49페이지>, 1976


천경자 화풍의 여인상하면 화려한 의상과 꽃이 떠오른다. 그녀의 작품에는 상징적 의미를 가진 요소들이 자주 등장하는데, 여인을 감싸주는 화려한 의상과 꽃은 그녀의 고독과 슬픔을 아름다움으로 승화하는 도구라고 볼 수 있다. 그녀는 사랑으로 인해 많은 상처를 받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려한 옷으로 자신을 치장한 채 계속 사랑받고 싶어했고 머리와 가슴에 꿋꿋이 피어있는 꽃처럼 자신의 사랑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가 50대의 나이에 완성한 자화상에서 그녀는 아프리카의 광활한 대지에서 꽃도 뱀도 없이 벌거벗은 채로 흐느끼고 있다. 살기 위해 그리러 간다며 스케치 여행을 떠나 모든 것을 다 초월해 온전히 자신일 수 있는 원시적 공간에 도달했지만 정작 작품 속 그녀는 오히려 여행을 떠나기 전보다 더 외로워 보인다. 젊은 시절의 낭만이 부질 없음을 깨닫고 옷도 꽃도 벗어 던진 채 자신의 본질적인 고독을 인정하고 받아들인 탓이 아닐까.

 

"나의 과거를 열심히 살게 해준 원동력은 꿈과 사랑과 모정입니다. 꿈은 그림이라는 예술과 함께 호흡해 왔고, 사랑과 모정은 그 꿈을 뒷받침해 왔어요. 4차원의 세계에 사는 여인의 아름다움을 그리는 것이 저의 꿈이에요. 눈빛이 강렬하고 금분을 짙게 입혀 피부가 금빛을 띠게 하고 표범무늬 같은 점을 박기도 하고…. 언뜻 보면 마녀와도 같은 인상을 풍기지요, 그러나 가슴만은 뜨거운 인간을 그립니다. 어쩌면 저를 지켜주는 마녀일지도 모르지요. 제 작품 속에 등장하는 여인들은 한결같이 목이 길고 멍한 눈동자를 지녔어요. 의상은 화려하고 머리에는 예쁜 꽃을 꽂았지만 저는 그 화려함 뒤에 숨은 고독을 찾고 싶었어요. 인간들은 누구나 현실을 뛰어넘고자 하고 신비와 환상을 좇지요. 아마도 현실이 너무도 삭막해서 그럴 거예요. 저는 신비와 환상의 세계에 대한 동경심이 남들보다 훨씬 강해서 환상적인 작품을 그릴 것이에요. 그림을 그릴 때 광기가 없으면 재미없으나 이 광기를 좇는 것도 힘들고 이 광기를 잘 다스려 그림으로 승화시키기도 힘들었어요. 작품 제작 때의 고통이란 다시는 그림을 그리지 말아야지 하는 다짐을 부를 정도지요. 그래도 지나고 나면 그때처럼 행복한 순간이 없고 또 살아야 할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음을 깨닫게 되요."

 

<환상 여행>, 1995


그녀는 감당할 수 있는 슬픔이기에 아름다우며 작품으로도 표현 가능한 것이라고 말하곤 했다. 그렇기에 내가 그녀의 젊은 시절 작품에서 고독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아름다운 여인의 낭만을 느낀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녀가 자신의 반평생을 회고한 작품에서는 그러한 낭만이 느껴지지 않는다.

 

또한 71세의 나이에 완성한 <환상 여행>에서도 화려한 의상과 꽃으로 아름답게 승화된 여인의 슬픔은 찾아볼 수 없고, 여인들의 원망 가득한 시선 만이 남아있다. 젊은 시절의 아름다움으로 승화된 고독은 그녀에게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던 것일까? 4차원 세계의 아름다운 여인을 그리고 싶다고 항상 말해왔던 그녀는 왜 굳이 저승의 여인들을 그릴 수 밖에 없었던 것일까?


그녀의 마지막 작품들 중 하나인 <환상 여행>에는 그 전의 고독하지만 아름다웠던 여인은 없고, 오히려 아름답지만 결국은 고독했던 그녀의 삶이 투영되어 있는 듯하다. 말년에는 그녀가 항상 그리고자 했던 겉보기에는 마녀 같지만 마음씨 만큼은 따뜻한 여인을 그렸으면 더 좋았으련만 노년에 그린 그림에는 젊은 시절의 고독함에도 아름다웠던 여인도, 4차원 세계의 아름다운 여인도 없이 그저 고독한 여인 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누군가는 천경자 화백의 그림에 값싼 센티멘탈리즘이 흐른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녀가 표현해냈던 여인으로서의 슬픔은 인위적인 것이 아니다. 그저 그녀 인생에서 스며 나오는 것이었을 뿐이다. 그녀도 예술가이기 이전에 한 명의 여인이었고, 때 묻지 않은 모습의 길례 언니를 닮고 싶어 했다. 그녀도 자화상에 고독한 눈빛과 어두운 색채 대신 그저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을 그려 넣고 싶었을 것이다. 아무리 자신의 인생 전반에 깔려있는 슬픔을 팔자소관이려니 생각한 화가라지만 같은 여자로서 한 여인의 사무치는 고독이 느껴져 안타까운 감정마저 드는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지 않을까.


☞ 천경자 화백의 작품 중 32점은 서울시립미술관 상설전시 <천경자의 혼>에서 전시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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