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정우의 미술 전시에 대하여

 

요즘 하정우, 솔비씨 등 여러 연예인들의 미술 전시를 심심치 않게 접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이런 소식을 접할 때마다 일단 이 사람이 그림에도 소질이 있었구나 라는 감탄이 들더군요. 그 다음에 드는 생각은 전업 작가들의 상대적 박탈감에 대한 우려입니다. 잘 아시다시피 우리나라이건, 외국이건 전업으로 작품 활동을 하는 작가들은 참 어려운 환경 속에서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이건 현재 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미술사 전체 시대에 해당하는 이야기이기도 하지요.

  

그런 전업 작가들이 영화, 드라마, 가요 등 여러 분야에서 인지도를 쌓은 후 미술 전시를 하는 연예인들을 보며 어떤 생각을 하게 될지 짐작이 갑니다. 여러 생각들 중에는 일단 무시하고 보자, 지극히 상업적이다 라는 생각도 존재하는 것 같고요. 그리고 그 주체가 연예인이다 보니 유명세 때문에 신랄한 비판도 여느 작가보다 꽤 많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비판의 이면에는 '정통 작가 출신'이 아니라는 선입견이 많이 작용하는 것 같아 보기 불편할 때도 있더군요. '정통 작가 출신'이 아닌 대중들의 시선을 받으며 사는 '연예인 출신'이 그린 작품이기에 상업적이다 라고 결론 내리는 것도 때론 불편하게 느껴집니다.

  

미술은 원래 지극히 상업적인 토양 위에서 발전해 왔기 때문이지요. 고대 그리스에서도 작가들은 주문자의 돈을 받고 아름다운 인체를 갖춘 신의 이미지를 창조해냈고, 르네상스 시대에는 절대 권력의 교황과 로렌초 데 메디치와 같이 막대한 부를 쌓은 상인들의 후원을 받아 미켈란젤로와 같은 인물들이 소위 위대한 작가로까지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후원자를 보통 패트런이라고 부르는데, 패트런은 19세기까지 주문자와 후원자가 함께 내재되어 있는 개념이었습니다. 그런 개념이 19세기 사실주의가 도래하던 시절에 와서 후원자 개념이 퇴색되고 주문자, 비평가, 컬렉터 등의 개념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즉 이전 까지는 패트런의 후원을 받아 부와 명예를 보장 받는 대신 작품 활동에 제약을 받았다면, 19세기 중반부터는 작품 활동에 있어서 완전한 자유를 추구할 수 있게 되는 대신에 후원을 보장받을 수 없게 된 것이지요. 반 고흐가 생전에 고생한 이유도 전통적인 패트런의 개념을 보장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대중에게 인정받지 못하면 아무리 자유롭게 작품 활동을 한다고 해도 생활이 어렵게 되는 숙명을 안게 된 것이지요.

  

지금의 작가들도 같은 운명 위에 놓여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미 유명해진 자들의 작품 활동이 탐탁치 않게 느껴지는 것이지요. "부업으로 그림을 그린다", "연예인의 전시를 주최하는 것 자체가 유명세를 등에 업은 이벤트일 뿐이다", "연예인과 그의 작품을 사주는 사람들, 그들만의 잔치일 뿐이다", "작가라기 보다 하나의 상업 활동이다" 등등의 비판은 이런 이유에서 비롯된 것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작가, 미술의 본질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면 연예인의 작품 활동을 조금 다르게 볼 수도 있을겁니다. 미술이란 무엇일까요? 여러 해석이 존재하지만 가장 근원적인 의미는 "아름다움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캔버스가 되었건, 돌이 되었건 말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정통 작가 출신'의 그것만이 미술이 되었던 적은 원래 없었습니다. 작가의 기량 차이에 따라 "잘 그렸다", "못 그렸다" 차이는 있었지만요.

  

그래서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양에서는 시를 잘 짓는 문인이 여기로 그린 그림까지 수준이 높으면, "시서화 삼절"이라는 명칭으로 높게 여긴 것입니다. 그림을 전문으로 하는 전문 화가 못지 않게 말이지요. 그리고 이런 문인들도 자신의 작품 자체를 모뉴먼탈시킨 채 방 안에 가두어 두지 않고, 친구에게 선물하거나 시장에 내다 팔기도 하였습니다. 어렵게 생활을 유지해 나가던 원나라의 황공망과 예찬이 그러했듯이 말입니다. 같은 사례를 열거하자면 끝이 없을 정도로 많은 화가들이 그러했습니다.

  

따라서 연예인 특유의 유명세를 등에 업고 있기에 어렵게 작품 활동을 이어 나가는 작가들의 가능성이 제한된다는 식의 비판은 합당하지 않습니다. 하정우씨 같은 배우가 연기 활동을 하며 느낀 자신의 존재에 대한 고민을 캔버스에 표현하는 것 역시 미술이라고 할 수 있으니까요. 물론 미술 전시가 균형을 잃은 채 이런 유명세에만 기대는 것은 지양해야 합니다. 그 못지 않게 신진 작가 양성에도 신경을 쓰며 균형을 갖춰 나가야 됩니다.

  

하지만 연예인이 그림을 그렸기 때문에 작품 자체를 폄하하거나, 그 가치가 과장되었다는 식의 편견은 지양해야 될 것입니다. 잭슨 폴록의 액션 페인팅이 높게 평가 받는 이유 중에는 잭슨 폴록 자체의 높은 유명세도 존재했기 때문입니다. '정통 작가 출신'이건, '연예인 출신'이건 작품의 미적 가치는 지금 그 누구도 함부로 단정지을 수 없는 것입니다. 작품에 대한 평가는 최소 100년 정도 흐른 뒤의 미술사학자들에게 맡겨야 됩니다. 역사가 원래 그러하듯이 말이지요.

  

연예인의 미술 전시가 화두에 오른다는 것은 일종의 트렌드라고 할 수 있는데, 그들의 작품을 폄하함으로써 '정통 작가 출신'들의 격이 높아지는 것으로 생각하기 보다는 이러한 트렌드를 기회 삼아 자신들의 작품을 잘 홍보하는데 쓰면 더 상생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

  

제가 봤을 때, 하정우씨의 작품은 즐길 수 있는 미술로써의 충분한 가치가 있고 볼만 한 것 같습니다. 하정우씨에 관한 여러 에피소드를 접한 대중의 한 사람으로서 그가 가졌던 연기에 대한 고민, 더 나아가 자기 자신에 대한 고뇌가 어떠했는지 알고 있는데, 그의 그러한 고민들이 입체주의, 표현주의 양식에 힘입어 잘 드러난 것 같습니다. 요즘 표갤러리와 까르띠에 메종에서 하정우씨의 개인전을 하고 있는데 오랜만에 보러 가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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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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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댓글 3

      • 동감합니다. 그렇게 따진다면 본디 순도 100% 예술인이 얼마나 될까 싶어요. 얼마전 무한도전 가요제의 음원발매를 부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본 음악계도 비슷한 사례인 듯 합니다. 궁극적인 해결법은 예술계가 나눠먹을 파이의 크기를 키우는 것 일텐데요. 여러가지 문제가 오버랩돼 씁쓸하네요

      • 표겔러리에 하정우전 보러 간적 있는데 약간 스타일은 바스키아랑도 비슷해서 식상한 감이 없지 않았지만 그래도 그림이랑 색상은 매우 좋더라고요. 저도 그림 보고 매우 잘그려서 놀랐었는데..ㅎ

      • 이 전시 보고 왔구나. ㅋ 바스키아 화풍과 비슷하긴 하지만 이러면서 서서히 자기 화풍을 찾아나가는거지. 나도 좋았어.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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