렘브란트, 그의 인생의 빛과 어둠


렘브란트, <니콜라스 튈프 박사의 해부학 강의>, 1632년, 캔버스에 유채, 169.5×216.5cm


바로크 미술은 르네상스나 인상주의보다 시기가 짧고 지역마다 특징이 다르기 때문에 많은 주목을 받지 못했다한 바로크의 본 뜻은 일그러진 모양의 진주”, “불규칙하고 뒤틀린 괴상한 모양”, “허세부리고 지나치게 과장된다라는 부정적인 뉘앙스가 강했지만 이제는 바로크 미술 특유의 낭만주의적인 경향이 부각되고 유명한 화가들과 작품들의 위상이 높여지면서 위대한 미술사조 중 하나로 여겨지고 있다.


르네상스 미술이 균형을 중시하고 평면적이고 선, 이상미를 중시했다면 바로크 미술은 리듬감과 관능적, 감각적이고 극적인 긴장감을 중시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바로크 미술은 대각선 구도와 강렬한 명암대비, 단축법, 스포트라이트 조명 효과 등 작품을 화려하고 외형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기법들을 사용했다.


렘브란트, <눈이 멀게 된 삼손>, 1636년, 캔버스에 유채, 272×205cm


바로크 미술의 대표적 화가 렘브란트가 살았던 네덜란드는 신교국으로 종교화를 금지하였고 상업도시의 발전으로 중산계층이 증가해 미술시장이 활발하게 되어 정물화나 풍경화, 그룹 초상화가 발달하였다. 렘브란트는 네덜란드 최고의 초상화가로서 빛과 그림자를 이용하여 강조하고자 하는 대상을 극적으로 표현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렘브란트는 자신의 작품에 빛과 그림자를 잘 활용한 화가이면서 그의 인생 또한 빛과 어둠으로 나타나진다. 이는 렘브란트의 자화상에서 볼 수 있는 그의 내면세계 변화를 통해 잘 알 수 있다.

 

렘브란트, <챙 넓은 중절모를 쓴 자화상>, 1632년, 캔버스에 유채, 47.6×64.4cm


그는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남 부럽지 않게 미술을 공부할 수 있었는데, 훗날 그는 부유한 집안의 딸과 결혼하면서 사치적이고 낭비하는 생활을 즐겼다고 한다. 이것은 그의 인생의 빛이었다. 진정한 의미의 빛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말이다.


렘브란트, <야간순찰대>, 1642년경, 캔버스에 유채,, 363×437cm


하지만 그의 인생의 어둠은 대표작인 <야간순찰대>로 시작된다. <야간순찰대>라는 이 작품은 네덜란드의 민병대 18명이 같은 값을 내고(이른바 더치페이!) 집단 초상화를 주문하여 2년에 걸쳐서 제작된 작품이다. 원래 집단 초상화는 (더치페이를 한만큼) 모두의 모습이 똑같이 중요하게 나타나야 하지만  이 작품은 가운데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대장과 부대장만이 주목을 받는 것처럼 보여서 상대적으로 다른 인물들은 옆 모습만 보이거나 뒤에 가려져 보일 듯 말 듯하게 그려졌다. 또한 16명의 가상인물과 닭을 들고 있는 소녀의 모습까지 더해졌다.


미술사적으로는 빛과 그림자를 잘 활용하고 역동적인 구도를 통해 민병대의 행진명령 상황이 생동감 있게 잘 표현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겠지만 당시 돈을 낸 다른 인물들에게 엄청난 비난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이 사건 이후로 렘브란트 인생에는 어둠이 깔리기 시작된다. 이 사건으로 인해 더 이상 렘브란트에게 그림을 주문하는 사람이 없어지게 되고 자신의 정신적인 지주이자 영감의 원천이였던 아내 마저 폐결핵으로 사망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렘브란트, <사도 바울의 모습을 한 자화상>, 1661년, 캔버스에 유채, 77×91cm


렘브란트는 이 작품을 그린 이후 파산신청을 하고 생활고에 시달리며 자신의 자화상을 그리는데 집중하였다. 그의 노년의 초상화에는 청년기와는 다르게 엄숙하고 조용하고 정적이며 어두운 내면의 심경이 잘 나타난다. 밝고 꿈이 가득한 청년기와는 달리 그의 인생의 어두운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다.


즉 렘브란트는 자신의 대표작인 <야간순찰대>로 인해 인생의 하락세를 맞이하게 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빛과 어둠의 마술사로 불리었던 그의 인생도 빛과 어둠, 이 극과 극의 인생을 살아가게 된 것이다.

 

렘브란트 作 <야간순찰대>의 수난



<야간순찰대>는 렘브란트의 인생만큼 많은 수난을 겪었다. 원래 <야간순찰대> 작품은 밤이 아닌 낮을 표현한 작품이었다. 18세기부터 <야간순찰대>라는 이름으로 추측되어 불리게 되었다. 이는 '흑변현상' 때문이다. 렘브란트는 그림에 연화물 계통의 안료와 선홍색을 띠는 버밀리온을 사용하였는데 이 물감에는 납과 황 성분이 들어있다. 즉 납과 황이 결합하여 황화납(PbS)이 되어 공기 중에서 검게 변하는 흑변 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전창림의 『미술관에 간 화학자』 참고)


또한  처음에는 저렴한 값에 민병대 본부에 걸려있다가 결국 창고에 들어가게 되면서 창고의 크기에 맞지 않아 가장자리마저 잘리게 되는 수모를 겪게 되었는데, 이후 프랑스의 나폴레옹에 의해 예술적 가치가 높이 평가되어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에 전시될 수 있었다. 하지만 1911년에 어떤 한 남자가 자신을 해고한 국가에 앙심을 품고 홧김에 칼로 작품을 난도질 한 사건이 벌어졌고, 1975년에는 해고된 어떤 선생이 렘브란트 작품을 칼로 훼손하는 일도 있었다. 그리고 1990년 정신병동을 탈출한 남자가 이 작품에 황산을 뿌리는 사건도 있었다.


렘브란트의 <야간순찰대>, 이토록 위대하면서도 수모도 많이 겪은 작품이 더 있을까라는 의문을 갖게 하는 작품이다.



신고

아르뜨

Curator, Art History, Exhibition, Museum, Gallery, Book, Stationery...

    이미지 맵

    미술/미술사 이야기 다른 글

    댓글 1

      • 화가 중에는 누가 봐도, 아무런 지식없이 작품을 봐도 정말 잘 그렸다라는 느낌을 주는 화가가 있는데 이런 화가야말로 "뛰어난 화가"라고 할 수 있겠지요. 렘브란트도 이런 몇 안되는 "뛰어난 화가"임에는 틀림없어 보입니다 :)

    *

    *

    이전 글

    다음 글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