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hibition...로버트 카파 사진전을 통해 본 큐레이터의 자질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에서 열렸던 <로버트 카파 사진전>이 끝났다. 지난 여름에 이 전시를 봤었는데 로버트 카파 사진에 감흥을 느낄 새도 없이 어설프기만 한 전시 설명 때문에 전시 보기가 꽤 힘들어져서 불쾌했던 기억이 난다. 이 글을 그 때 쓸까 말까 고민했지만, 남의 장사 망치는 것 같은 미안한 마음에 전시가 끝나면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을 먹게 되었다.


전시를 볼 때는 대부분 각 섹션 별로 벽에 걸린 섹션 소개부터 읽고 나서 감상하기 마련이다. 즉 그 전시의 성패는 이해하기 쉽게, 그러면서도 흥미를 돋울 수 있는 소개글에 달려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로버트 카파 사진전>은 시간이 부족했는지, 아니면 전시 스탭의 역량이 부족했는지 소개글이 엉망에 가까웠다. 학부생 레포트보다 못한 소개글 같았다.


전시를 보며 급하게 적어온 것들을 바탕으로 짚어보자면 다음과 같다.



독일 군인이자 장개석의 군사자문관이었던 폰 팔켄하우젠이 독일로 떠나는 모습. 독일과 일본이 협력관계를 맺음에 따라 폰 팔켄하우젠은 중국을 떠나게 되었으며 이후 장개석은 외로운 싸움을 시작함.


☞ 외국 인명을 언급할 때는 그 나라의 발음으로 표기한 후 괄호 안에 원어를 적어주는게 기본적인 외래어 표기법이다. 물론 매번 그럴 필요는 없고 보통 챕터 혹은 문단의 맨 앞에만 그렇게 하고 그 후에는 한글로 외국어 발음을 쓰곤 한다. 예를 들면 "나카시마 미카(中島美嘉)는 <눈의 꽃>이라는 노래로 유명한 일본의 가수이다"라고 하지, "중도미가(中島美嘉)는 <눈의 꽃>이라는 노래로 유명한 일본의 가수이다"라고 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로버트 카파 사진전>의 섹션 소개글을 보면 어떤 글은 '장개석'으로, 어떤 글은 '장제스'로 되어 있었다. 즉 외래어 표기법은 차치하더라도 기본적인 통일성조차 갖추지 못했다는 말이다.


또한 위의 글에서 '독일과 일본이 협력관계를 맺음'이라고 되어 있는데, 보통 역사 서술에서는 그냥 '동맹'이라고 하지 '협력관계'라고 하지 않는다. 의미가 틀린 것은 아니지만 통용되는 서술을 무시한 것은 어쩌면 외국에서 간행된 로버트 카파 사진전 도록을 아무 생각없이 거칠게 번역한 것에서 비롯된게 아닐까 싶다. 이러한 사례는 다른 글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구 소련은 전쟁 후에 거의 모든 서양출신 사진작가의 입국을 막았기 때문에 카파는 친구인 존 스타인벡과 함께 소련을 여행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 "구 소련은 전쟁 후에 거의 모든 서양출신 사진작가"라는 문장 역시 의미가 틀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냉전 시대의 관점으로 해석하자면 자본주의 체제의 국가들을 '서방 국가'라고 칭하지, '서양'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뭐.. 구 소련은 서양아닌가?


이렇듯 최소한의 감수조차 하지 않은 글을 전시에 보란듯이 걸어놓았다는 것은 비싼 티켓값을 내고 들어온 관람객에 대한 예의가 아니며, 무시하는 행태로까지 비판받아야 마땅하다. 만약 외국의 글을 번역해서 이번 전시에 사용했다고 가정한다면 우리나라에서 통용되는 용어가 적절하게 사용될 수 있도록 감수, 검증 과정을 거쳤어야 한다. 번역은 독해가 아니라 '또 하나의 글 서술'이다.



7월 7일 선거일 아침 일찍 카파는 투표소에 도착하여 투표 상자를 둘러싼 피할 수 없는 싸움을 사진으로 찍었다. 그날 오후 카파는 투표에서 승리한 정부측 광신적인 지지자들이 발포하는 것으로 인해 일어난 반대파의 데모 현장을 사진에 담았다. 그날 오후부터 밤까지 추가적인 충돌이 있었다. 결국 최소 30명이 사망했고 수백 명이 부상을 입었다. 이 날은 멕시코 시티 역사상 가장 고요한 선거일이었다.


☞ 멕시코 시티에서 벌어진 사건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글의 내용으로 미루어봤을 때 마지막 문장인 "멕시코 시티 역사상 가장 고요한 선거일"은 아마 은유, 역설적인 영어식 표현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런 부연 설명없이 멕시코 시티에서 큰 사태가 벌어졌는데 "가장 고요한 선거일"이라고 작성한 것은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다. 이 역시 직독직해에서 벌어진 일이라 생각된다.


마지막으로 마티스에 관한 사진을 보면,



침대에서 일하고 있는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 working from his bed.)


☞ 야수주의 화가 마티스에 관한 사진을 흥미롭게 볼 수 있었다. 그 사진 밑에 설명글이 있었는데 마티스가 침대에서 일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럴 때는 보통 "작업 중이다"라고 하지, "일하고 있다"고 하지 않는다. 전업 작가이니 "일하고 있다"는 표현도 틀린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마티스가 회사원이었나? 이 역시 원문인 "working"을 그대로 독해한 것에서 비롯된 일일 것이다.


이처럼 대표적인 사례만 놓고 봐도 이번 <로버트 카파 사진전>의 준비가 얼마나 엉성했는지 알 수 있었다. 전시 기획을 하는 큐레이터는 작품 설치하는 인부가 아니라 폭 넓고 깊이 있는 지식을 바탕으로 미적 가치를 끄집어 내어 소개해주는 직업이다. 그렇다면 이런 사소한 문장까지도 통일성있게, 제대로 된 역사적 서술로 바꿀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큐레이터는 가방 끈이 길어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준비 기간이 얼마나 부족했는지, 혹은 예산이 얼마나 부족했는지는 모르지만(전시 홈페이지 보니까 스폰도 꽤 받은 것으로 보이지만) 기본적인 것도 갖추지 못한 전시였다고 할 수 있겠다. 이렇게 해도 괜찮다고 하면 공간만 대관해서 작품들을 대충 그룹지어서 걸어놓기만 해도 될테니 말이다. 이제는 더 이상 이런 전시들이 보이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전시 준비는 마치 하나의 작품을 만드는 것처럼, 하나의 음악을 공연하는 것처럼 언제나 완벽을 기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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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댓글 2

      • 네 맞아요. 그때 기억이 나네요. 친구랑 갔었는데 도저히 한글해석본이 이해가 안가서 저는 영어로 읽었어요.

      • 저랑 같은 생각을 가졌던 분들이 꽤 많으신 듯 하네요. ㅎㅎ 역시 외국 미술은 원어로 읽는게 가장 좋으려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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