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성과 인조성의 사이에서, 작가 권오상





5월의 홍콩 아트페어와 G FAIR에서 아라리오 갤러리의 메인을 장식하던 작품이 참 신기했다. 미술에 관심을 두기로 작정했던 상반기, 공부하려고 가는 페어에는 꼭 이 작가의 작품이 있었고, 신기하면서도 재밌는 이 작가의 뇌와 친해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With Lean, 2009, C-print, Mixed media, 254x85x65cm

Jangular, 2010, C-print, mixed media, 211x99x78.7cm
 

A Family Photo of 440 Pieces Composed of Tenacity
집착으로 구성된 440장의 가족사진
1998-1999, C-print, mixed media, 120x130x60cm

바로 권오상 작가이다.

작가에 대해서 궁금해지기는 이 분이 처음이었다. 그의 작품은 먼저 사진을 찍고, 가벼운 스티로폼 재료로 뼈대를 만든 후, 그 위에 찍은 사진을 재조합하여 다시 붙이는 작업이다. 2D였던 한 장의 사진은 3D의 입체적 실물이 되어 눈앞에 나타난다. 한 장의 추억으로 끝날 것 같던 사진은, 여러 장이 모여 진짜보다 더 진짜 같고 가짜보다 더 가짜 같은 조형물을 만들어낸다. 이렇게 만든 시리즈는 <데오도란트 시리즈>.
 

전시제목 ‘데오도란트 타입’에서 ‘데오도란트 (Deodorant)’는 방취제를 뜻하는 말로, 사람의 채취 혹은 암내를 완화시키는 용품을 지칭한다. 이 제품은 냄새의 원인을 근본적으로 제거하기 보다는 좋지 않은 냄새를 슬쩍 다른 것으로 바꾸어 사람들이 그 냄새를 못 느끼게 한다. 이는 여러모로 사진조각의 속성과 유사하다. 권오상은 사진이란 매체로 대상을 포착하지만, 그 포착한 이미지가 조합되면서 본래 대상과는 살짝 다른 것이 만들어진다.                                                                                         권오상 작가 공식 홈페이지의 essay 中 

사실 그의 작품이 재미있었던 것은, 작품을 볼 때 대학교 동기들을 만날 때의 어떤 생경함과 동일하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어느 날, 별로 친하지 않은 동기들을 만나도 "우와 잘 지냈니?"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응! 넌 너무 예뻐졌다!" 라는 미칠 듯한 반응을 할 때 뇌에 느껴지는 생경함은, 이 사람을 봐서 반가운 건지 모르겠지만 일단 사회적 동물임을 표출하고 있는 순간의 느낌인 것이다.

그 순간의 나는 정말 가면을 오백만장 정도 준비한 연극배우처럼 본질은 전혀 보지 않은 채 외적으로 꾸밀 준비를 하고 있다. 왜냐하면 내면을 볼 수 없으니까 말이다. 오로지 나만 알 수 있는 이 감정이 진짜인지 아닌지 스스로 판독할 수 없을 때의 아스라함 같은 것이 권오상 작가의 작품에 나타나는 것 같다.

The Flat 15, 2005, Diasec on lightjet print, 180x230cm


위는 <더 플랫 (The Flat)>시리즈로, 2003년경부터 패션지에 실리는 명품 시계나 보석 사진들을 전부 오린 후, 그 얄팍한 종잇장을 철사로 지지하여 바닥에 세워서 일명 ‘종이로 된 간단한 조각’을 만들었다. 중요한 점은 이 한없이 연약한 종이 조각들을 바닥 가득 설치한 후 다시 사진으로 찍어 전시한다는 것이다.(☞ 네이버캐스트)

2003년 어느 날 권오상의 작업실에 놀러 온 동료작가가 그날 낮에 남대문 시장에서 본 가짜 롤렉스 시계 얘기를 꺼냈고, 권오상은 마침 보고 있던 잡지에 나온 롤렉스 사진을 오려 동료의 왼팔에 감아주었다. 
 
작업을 통해 물건이 원래 가지고 있던 느낌은 사라지고, 작가가 의도한 느낌만 남게 된다. 생명감이 존재하거나 하지 않는, 그저 일상에 실재(實在)하는 것들은 작가를 만나 있지도 없지도 않은 비 물질성을 갖게 된다. 이것은 새로운 성性이다. '제 3의 성' 일수도 있겠다.

2011 October (Vase), 2012, Lightjet print, wood frame, 146x97cm


그의 작품 시리즈는 <데오도란트 타입>, <더 플랫>, <더 스컬프처> 3가지로 구분 될 수 있다.
 

<더 스컬프처 (The Sculpture)> 시리즈

Torso(The Sculpture 13), 2008-2010, Acrylic on Stoneclay, Resin,  Aluminum, 180x150x70cm 

2010년의 개인전에 출품된 5점은 모두 오토바이를 소재로 한 작업으로 핸들과 바퀴가 제거되었기에 토르소의 형태를 띠었다. 미술사적으로 토르소의 개념은 19세기 로댕과 연관되어 형성되었다고 이야기된다. 로댕 이전까지 불안전한 인체, 즉 인체의 몸통만으로는 미적 가치를 가지기 어렵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로댕은 불안전한 형태가 완벽한 형태보다 도리어 상상력을 더 자극시킬 수 있다는 가정 하에 본격적으로 몸통만을 만들었다.

화려한 색으로 채색된 이 신작에서 눈에 띄는 것은 바퀴가 달린 독특한 조각대이다. 돌림판의 역할을 하는 이 받침대는 제작과정에서 사용되는 기구이다. 선재(線材) 방식으로 금속을 연결했기에 조각대 자체에서 부피감을 거의 느낄 수 없지만, 그 덕분에 토르소의 양감이 훨씬 극대화되었다. 그리고 그의 토르소 조각 표면은 다소 울퉁불퉁한 편이다.

화가가 오일페인트와. 특유의 붓질(brushwork)로 화가의 혼을 암시하듯이, 권오상 역시 조각가의 혼이 담긴 터치를 생각하며, 그런 터치가 있는 현대조각을 제작하길 원했다. 그렇다고 조각가의 진짜 혼을 작업에 담고자 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러면서 실제로 혼이 담겼을 수도 있음) ‘더 스컬프쳐’ 연작을 하면서 그는 조각이라는 장르의 고유성을 되새겼고, 동시에 조각의 매력에 매료되었다.(☞ 권오상 작가 공식 사이트)

권오상 작가의 작품들은 인간적이고, 인조적이다. 목동 아파트 단지에서 밤 10시에 길을 걷다가, 옆에 썬캡을 쓰고 운동을 하는 모르는 사람에게 말을 걸었을 때 SO COOL하게 다가오는 대답 같은 느낌이다. 별로 어색할 것이 없는, 그렇지만 인위적이고 조작적인 만남이다. 그의 사진은 우리에게 전달되는 인위감을 숨기지만, 아예 인위적으로 변신한다. 우리는 더 이상 그의 작품을 자연스럽게 느낄 수 없으며, 더 이상 인위적으로 느낄 수도 없다.

낯선 사람을 만나게 될 때 착- 움츠러드는 우리의 모습같은 그의 작품들은, 마치 사진으로서의 '나'를 모두 보여주는 것 같지만 철저하게 '나'를 숨기고 있다. 우리 모두의 철저하고 암묵적인 지금이 가두어지고, 바로 1분 뒤의 상황을 해석할 수 있게 결말을 열어 놓은 작가의 작품들이, 1분 뒤의 삶을 모르는 우리들과 닮아 인간적이라고 생각한다.

상쾌한 묵직함을 선사하는 그의 작품을 응원한다.

* 이 글에 쓰인 모든 이미지는 권오상 작가 공식 사이트에서 가져왔습니다. 더 많은 작품들이 있고, 작가의 작품세계를 볼 수 있는 에세이도 있으니 방문 해보시면 좋을 것 같네요.(☞ 권오상 작가 공식 사이트)  

* 제가 몇 문구를 인용한 네이버캐스트에도 그의 작품세계에 대한 글이 있습니다.(☞ 권오상 작가 네이버 캐스트)

아르뜨

현재 박물관에서 큐레이터로 일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시각문화를 향유하는 것에 조금이나마 기여하고자 미술사, 전시 등을 쉽게 소개하는 아트앤팁닷컴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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