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치되었다가 봄의 여신까지 된 클로리스의 이야기, 보티첼리의 La Primavera(봄)




납치되었다가 봄의 여신까지 된 클로리스의 이야기, 보티첼리의 La Primavera(봄)


Sandro Botticelli, <La Primavera(봄)>, 1478년경, 패널에 템페라, 203×314, 피렌체 우피치미술관

서양미술사에서 '봄'을 주제로 한 그림은 굉장히 많습니다.
전시회에서 혹은 TV 다큐멘터리에서 스치듯 보아온 그림들을 떠올리면
봄을 그렸다는 사실을 알 수 있죠.

그만큼 서양미술에서 봄이라는 주제는 화가들이 즐겨쓴 주제라고 할 수 있죠.
그 중에서도 저는 산드로 보티첼리<La Primavera>는 특별하게 다가오네요.
보통 봄이라고 하면 따뜻하고, 꽃이 피는 풍경의 대지를 연상시키지만
보티첼리의 <La Primavera>는 언뜻 보면 전혀 봄을 느낄 수가 없거든요.

하지만 이 그림 속에 숨어있는 도상을 해석해보면
그 어느 그림보다 화사한 봄이 숨어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일단 그림을 보면 굉장히 평면적이죠.
르네상스 시대부터 시작되어온
하나의 소실점에 의한 원근법은 전혀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마치 연극 무대 위에 배우들이 커튼콜을 하러 나와서 일렬로 서있는거 같습니다.

하지만 그 움직임은 모두 제각각이며,
각자 자신의 역할에 맞는 몸짓을 보여주고 있죠.

일단 왼쪽부터 보면
열매를 따려고 손을 뻗은 남자는 머큐리(로마 신화에서 거리의 신)입니다.
그리고 시스루룩의 옷차림으로 뭉쳐있는 세명의 여인은 삼미신, 즉 미의 세 여신입니다.
가운데는 역시 미의 여신하면 떠오르는 비너스이죠.
그리고 비너스 오른쪽에 서있고, 비너스 못지 않은 자태와 옷차림을 하고 있는 여자가 바로
'봄의 여신 플로라'입니다.
꽃 왕관까지 쓰고, 꽃 문양으로 장식된 옷차림은 비너스의 아름다움을 압도할만큼 아름답죠.


근데 그 오른쪽을 보시면
시스루룩의 옷차림을 한 어떤 여자가 차가운 피부를 가진 어떤 남자에게 쫓기고 있네요.
도대체 무슨 일일까요?

저 여자는 남자와 어떤 관계이길래 저렇게 다급한 표정으로
벗어나려고 하는 걸까요?

여러가지 상황을 추측할 수 있겠지만
보티첼리의 의도대로라면 저 여자는 바로 대지의 님프인 클로리스입니다.
클로리스를 괴롭히는 나쁜 남정네는 바로 호색한이자 서풍(西風)의 신인 제피로스이죠.

제피로스의 형제들은 남풍의 신 노토스와 북풍의 신인 보레아스라고 합니다.
이른바 '바람난 가족'이군요. ㅎㅎ

로마의 시인 오비디우스가 쓴 『변신이야기』에는
클로리스가 꽃의 여신 플로라로 변신하는 이야기가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플로라는 훗날 이렇게 얘기했다고 하죠.

"난 원래 클로리스였는데, 지금은 사람들이 플로라라고 부른다."

이 이야기는 차가운 겨울의 대지가 따뜻한 바람을 만나자
꽃이 피는 봄으로 변하는 과정을 의미합니다.
은유적이고, 상징적으로 표현한거죠.

그렇다면 클로리스가 입고 있는 저 하얀색의 시스루룩은
바로 눈으로 뒤덮인 대지가 아닐까 싶네요. ^^ 

그리고 호색한 제피로스가 바람을 불며 클로리스를 붙잡으니 
클로리스의 입에선 꽃이 마구 쏟아져나오고 있군요.

그렇게 해서 클로리스는 봄의 여신 플로라로 변신하게 된겁니다.
즉 플로라와 클로리스는 그림에서 두 사람처럼 그려졌지만
실제로는 한 사람이고, 변신 전과 변신 후로 나누어 표현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클로리스를 플로라로 변신시킨 장본인인 제피로스는
클로리스를 납치해서 결혼에 성공하고,
카르포스라는 자식까지 낳았다고 하네요.

그렇다면 클로리스는 결혼에 성공했다고 해야할까요,
아님 납치까지 당한 비운의 여신이었다고 해야할까요? 

비록 납치를 당하긴 했지만
남편이 봄의 여신까지 만들어준걸 보면 사랑받은 아내였고,
나름 성공한 결혼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 


ps.> 이 그림을 감상할 때 들으면 좋을
요한 스트라우스의 <Voces de Primavera>를 함께 올려드립니다.
워낙 유명해서 한번씩은 들어보셨을거에요.
춥기만 했던 겨울에서 막 벗어나
물이 녹아 흐르기 시작하고, 숲은 초록색이 조금씩 보이며,
따뜻한 곳을 찾아 떠났던 철새가 막 돌아와서 지저귀는 풍경이 연상되는 곡이죠. ^^



아르뜨

현재 박물관에서 큐레이터로 일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시각문화를 향유하는 것에 조금이나마 기여하고자 미술사, 전시 등을 쉽게 소개하는 아트앤팁닷컴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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